똥꼬 전문 의사 이선호의 이수역에서⑨ 항문 주위 농양에 요행이란 없다

입력 2018-10-15 14:54
생로병사란 말이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의미하기도 하듯이 사람이 살아가면서 질병이나 노화를 피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여도 질병이나 노화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물론 의학이나 과학 또는 경험으로 입증된 많은 방법들로 인해 과거에 비해 수명도 늘어나고 상당한 노령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매우 젊게 사는 분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질병에 걸려서 오신 분들 중에는 “나는 배변도 규칙적으로 하고 좌욕도 매일 하고 적당한 운동에 섬유질 음식도 골고루 섭취하고 술 담배도 안 하는데 왜 이런 병이 생긴 겁니까?” 하고 묻는 분도 계시다.

그렇다. 왜 어떤 분은 지킬 것 다 지키는데 병이 생기고, 왜 어떤 분은 그런 것 마구 무시하고 사는데 병이 안 생기는 것일까?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소설을 쓴 베케트는 파리에서 길을 걷다가 칼에 찔려 죽을 뻔했는데, 나중에 법정에서 그를 찌른 사람에게 왜 나를 찔렀냐고 물었더니 “나는 모르오. 선생”이라고 대답해 혀를 찼다고 한다.

세상 일은 과학적으로 아귀가 착착 맞아돌아가는 일도 있지만, 이렇게 무작위와 부조리에 의해 생기는 일도 많다. 그래도 의학이나 과학에서는 과거 모호했던 일들의 인과관계가 입증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인간 행동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일부 무작위성의 세계가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통계적으로 보면 먹고 자고 배설하는 바이오리듬을 규칙적으로 가지고, 몸과 마음을 너무 혹사시키지 않도록 유의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고 질병에 덜 걸리는 것이 통계적 사실이니 일부 무작위성과 부조리함에 대해 조금 관대해져도 괜찮을 듯하다.

항문병 중에 항문주위농양은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발병한다. 항문 안쪽의 항문샘 깊숙한 곳에서 염증이 시작되며 항문 주위에 고름이 잡힌다. 이런 농양은 빨리 절개하여 배농해주어야 한다.

배농하여 통증과 부종이 사라진 뒤에도 얼마 지나 또 같은 증상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 염증이 있었던 자리에 치루관이 형성되어 그 관을 통해 쉽게 염증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문주위 농양으로 절개 배농한 뒤에는 꼭 치루관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치루관이 확인되면 당장은 아무 증상이 없더라도 수술을 하여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놔두면 나중에 더 복잡한 치루로 진행되며 난치성 치루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내 몸의 건강을 무작위성의 요행에 맡기는 것은 아무래도 현명한 처사가 아닌 것 같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