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있으면 쏘고 싶다” 비리 유치원 감사관이 원장에게 들은 말

입력 2018-10-15 14:08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 사립 유치원 회계부정 사례를 중심으로’에서 토론회를 주최한 박용진 의원이 토론회를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 회원들에게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자며 안내하고 있다. 뉴시스

각 시·도교육청 감사로 전국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된 가운데, 경기도 지역 감사에 참여했던 최순영 경기도교육청 대표 시민감사관이 현장에서 목격한 사립 유치원 운영 실태를 전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15일 출연해서다.

최 감사관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은 2016년부터 관내 유치원 특정감사에 나섰다. 92곳을 감사했고, 모두 96억원 정도가 잘못 사용된 사실을 파악했다. 최 감사관은 “현장에 가면 원장들은 노골적으로 ‘국가가 지원해줬으면 내 돈’이라고 말한다”며 “한 마디로 공과 사가 구분이 안 되는 곳”이라고 했다.

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최 감사관이 방문한 한 유치원의 ‘아이들 약품 구입’ 명목의 영수증에는 무좀약, 액제 소화제 등이 적혀있었다. 요리 교실을 위한 물품을 구입한다며 커피나 생리대를 산 경우도 있었다.

최 감사관은 ‘시민감사관은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잘 모르고 문제가 없는 부분까지 비리로 봤다’는 유치원 측 주장에 대해 “전문성 있는 변호사, 노무사, 회계사 등이 시민감사관으로 있다”고 반박했다. 유치원에 감사를 위한 서류를 요구하면 협조하지 않았다며 “은닉 통장을 찾아낸 적도 있었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 감사관은 “적발된 사례는 누가 봐도 업무와 연관성이 없는 것들”이라며 “예를 들어 매번 저녁 7시쯤마다 막걸리, 맥주, 홍어회 같은 것들을 산 경우”라고 말했다. 영수증을 확인했을 때 직원 회식으로 인한 지출보다는 개인이 사적으로 구입했다고 보는 게 적절했다는 것이다. 또 “부정사용으로 판단될 경우 먼저 유치원 측에 해명 기회를 주고 2~3차례 검토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유치원 원장이 감사관에게 폭언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최 감사관은 “모 원장이 우리 감사 팀장한테 ‘소리 없는 총이 있으면 정말 쏘고 싶다’고 했다더라”며 “그 얘기를 같이 현장에 나갔던 사람들이 다 들었다고 했다. 그 얘기 듣고 정말 멍했다”고 털어놨다.

최 감사관은 일각에서 어린이집 전수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관련해 “우리가 감사한 곳 중 어린이집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 있었다. 다 같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비리 유치원 파문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6~2018년도 감사 자료를 공개하며 시작됐다. 박 의원은 부정사용이 적발된 사립 유치원의 실명을 공개하기도 했다.

자료에는 유치원 체크카드로 명품 가방을 구입하거나, 원장이 유치원 교육비 계좌를 통해 자녀의 대학 입학금을 지불하는 등의 행태가 담겼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적발된 사립 유치원은 1878곳에 이르며 저지른 비리도 5951건이나 된다. 적발 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12일 “자료를 추가로 확보해 제공할 예정이다. 적발 유치원 수와 건수, 금액이 커질 수 있다”고 페이스북에 밝혔다.

가장 큰 공분을 산 것은 경기도 화성 동탄에 위치한 환희유치원이다. 이 유치원 원장은 명품 가방, 성인용품 구입 등 모두 6억8000여만원을 부정사용했다. 적발된 비리 종류도 13개에 달한다. 학부모들이 해명을 요구하며 자리를 마련했지만, 실신한 원장이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MBC가 14일 공개해 더욱 주목받았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