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앞에선 더욱 그렇다. 규모 7.5의 강진과 쓰나미로 7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팔루시(市)를 한국교회봉사단(한교봉·대표회장 이영훈 정성진 고명진 소강석)‧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대표회장 전계헌 최기학 전명구 이영훈) 실사단과 함께 지난 13일 찾았다.
재해가 발생한 건 지난달 28일이었다. 보름 가까이 지났지만 시간은 그날에 멈춰 선 듯 보였다. 일행을 반긴 건 어둠에 잠긴 거리와 굵은 빗줄기였다. 일상이 깨진 자리는 반복되는 정전으로 인한 암흑과 여진이 남긴 공포가 대신했다. 거리는 조용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곳곳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그나마 그곳에 있어야 구호품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다.
화교들이 이끌던 지역 상권은 이들이 피난을 떠난 뒤 완전히 마비됐다. 식료품을 살 곳도, 끼니를 해결 할 식당도 눈에 띠지 않았다. 텅 빈 거리를 지나는 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개와 고양이들이 전부였다. 그나마 시내에 남은 이들은 팔루의 관광명소이던 포누렐레 다리 근처에 모여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 다리는 이번 지진으로 엿가락처럼 휜 뒤 완파됐다.
팔루의 유일한 한국인 선교사인 류제국(55) 목사는 "우기도 아닌데 이런 폭우가 내리는 것도 다 자연재해의 하나로 보인다“면서 ”지진이 발생한 후 팔루 사람들은 큰 트라우마 속에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튿날인 14일엔 다행히 비가 그쳤다.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기온이 치솟았다. 낮 최고 기온은 37℃를 찍었다. 여전히 수천구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는 팔루의 주민들은 무더위가 전염병을 불러올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현지인 의사 4명과 의료봉사를 온 최영미(48‧여) 의료선교사도 전염병이 제2의 재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미 몇몇 마을은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고 아예 공동묘지로 지정한다고 정부가 발표했다”면서 “눈에 보이지 않아 찾지 못할 뿐 불과 2~3m 아래에 뒤엉켜있을 시신들이 부패하면 반드시 병이 생긴다”며 한숨을 쉬었다.
팔루의 지진에선 땅이 액체처럼 흘러내리는 액상화 현상이 피해를 키웠다. 최근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이 공개한 인공위성 영상엔 한 마을이 갑자기 강물처럼 흐르다 이내 땅에서 솟아 올라온 토사가 마을 전체를 삼키는 장면이 나온다.
액상화 현상으로 팔루시 인근 마을 두 개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이 있던 자리를 인근 주민 수 십 명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경 2㎞ 너비의 ‘조노 마을’이 사라진 곳에서 고모가 살던 집의 흔적을 찾던 할리(49)씨는 “마을은 사라졌고 그 자리엔 옆 마을 옥수수 밭이 흘러내려 왔다”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고모 가족 모두는 실종됐다”며 참담해 했다.
또 다른 액상화 마을인 ‘뽀또본 마을’에선 목숨을 건진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는 이르판(36)씨는 자신의 집 양철지붕을 뜯어내고 있었다. 대피소에 사용할 요량이었다. 그는 “지진이 날 때 온 가족이 함께 있다 기적적으로 모두 살아 났다”면서 “하지만 1만3000명에 달하던 주민 중 60븒는 죽거나 실종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살려달라’던 그날 밤의 울부짖음이 너무 생생해 괴롭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산 사람들은 희망을 꿈꿨다. 한 대피소에서 만난 사리(17‧여)씨는 “어서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뽀또본 마을의 이웃 9가정과 함께 공터에 텐트를 세워 지내고 있지만 많이 불편하다”면서 “그래도 살아났다는 게 감사하고 빨리 졸업해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날 오후 실사단은 팔루시내에서 남쪽으로 35㎞ 가량 떨어진 스망기 마을을 찾아 구호품을 전달했다. 이 마을은 산골 오지에 있어 정부의 손길이 닿질 않는 곳이다. 실사단은 1톤 분량의 쌀과 라면, 식용유, 소금, 설탕을 담은 구호품을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이 마을 이장 리두완(52)씨는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110가정, 400여 명 주민이 살고 있지만 너무 오지라 구호품이 거의 오질 않는다”면서 “이 먼 곳까지 한국교회가 찾아주니 이장으로서 굉장히 고맙다”고 인사했다.
주민들은 실사단과 취재진을 향해 “뜨리마 까시”라고 연호하며 두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류 선교사는 “우리말로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는 인사로 최고의 감사를 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사단을 이끈 천영철 한교봉 사무총장은 “많은 재난 국가를 방문했지만 팔루처럼 초토화 된 곳을 보질 못했다”면서 “이번 방문을 계기로 한교봉과 한교총이 한국교회와 함께 인도네시아 팔루시 지원을 위한 모금을 시작해 더욱 큰 사랑을 전하겠다”고 밝혔다. 팔루(인도네시아)=글‧사진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