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윤주만 “듣보잡 댓글도 신기하고 감사” [인터뷰]

입력 2018-10-14 17:52 수정 2018-10-14 22:26
배우 윤주만

“제게 이렇게 큰 관심을 가져주시다니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제가 지금 ‘신기하다’는 말을 계속하고 있는데…(웃음). 요즘 정말 신기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내 이런 식이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에서 그는 “신기하다”는 말을 하고 또 했다. 얼굴에는 선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tvN) 속에서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는 얼마간 지워진 뒤였다. 배우 윤주만(37)을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방송을 보면 늘 아쉬움이 남았어요. ‘좀 더 고민했어야 하는데 부족했나’ 싶은 적이 많았죠. 그럼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끝나고 나니 굉장히 허전하고 먹먹하네요. 보통 작품을 마치면 시원섭섭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극 중 윤주만은 일본 낭인 유죠 역으로 매 순간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어릴 적 가족을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 무신회 낭인으로 살아온 구동매(유연석)의 충직한 오른팔. 단 한 명의 ‘오야붕’만을 섬기는 그의 의리는 비정한 시대를 비추는 한줄기 빛과 같았다.

제작사 화앤담픽처스와의 오랜 인연이 ‘미스터 션샤인’ 출연으로 이어졌다. 윤주만은 김은숙 작가의 전작인 ‘시크릿 가든’(SBS·2010~2011) ‘신사의 품격’(SBS·2012) ‘도깨비’(tvN·2016~2017)에서 개성 있는 연기로 눈도장을 찍었다. 캐릭터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에 이응복 감독 또한 남다른 신뢰를 보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죠 역을 연기한 배우 윤주만. 드라마에서 그는 이병헌 김태리 유연석 변요한 김민정 등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화앤담픽처스 제공

“제가 ‘도깨비’에서 지은탁(김고은)을 따라다니는 사채업자로 짧게 나왔어요. 은탁이 이모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2인조로 연기한 배우가 ‘산 속에 가서 묻자’는 대사를 할 때 제가 모종삽을 하나 준비해갔죠. 이응복 감독님이 되게 좋아해주셨어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예뻐 보이셨나 봐요.”

‘미스터 션샤인’의 유죠 캐릭터 역시 탄탄하게 준비해 나갔다. 동매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을 조선인이라는 전사(前史)를 쌓는 건 기본. 일찍부터 일본어와 액션 연습에 몰두했다. 유튜브에서 일본 검술을 다룬 영상을 찾아보고 사무라이 소재의 영화들도 섭렵했다. 검을 다루는 자세를 능숙하게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날렵한 이미지를 위해 촬영 전 몸무게 10㎏을 감량했다. 엔딩신을 앞두고는 더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일본에서 본국 낭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채 조선으로 실려와 오야붕 앞에 버려지는 바로 그 장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피로 범벅이 된 유죠와 그를 바라보며 분노하는 동매의 모습은 강렬한 여운을 남겼더랬다.

유연석과의 호흡은 매 회 빛났다. 윤주만은 “(유)연석이와는 ‘구가의 서’(MBC·2013) 때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함께하는 신이 많지 않았던 터라 이번에 많이 친해졌다. 연석이도 저에게 ‘(유죠가) 형이라서 다행’이라고 얘기해주더라. 일단 우리는 개그코드가 잘 맞는 편이다. 아재개그를 좋아한다”고 웃었다.

이어 “심각한 장면을 찍고 나서도 ‘컷’만 되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속 깊은 얘기도 많이 나누곤 했다. 연석이도 조·단역 시절의 서러움을 모르지 않아서인지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을 두루두루 잘 챙기더라. 연석이가 워낙 인성이 좋다. 정말 착하다. 게다가 밥값도 잘 낸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죠 역을 연기한 배우 윤주만. 화앤담픽처스 제공

유죠는 짧은 등장에도 매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날렵한 몸놀림과 중저음의 목소리가 캐릭터에 무게감을 더했다. 윤주만은 “대본상에 큰 임팩트가 있거나 대사가 많은 역할이 아니었는데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신기하다”며 “제가 잘했다기보다 좋은 글을 써주신 김은숙 작가님과 멋지게 연출해주신 이응복 감독님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윤주만은 망설임 없이 ‘미스터 션샤인’을 자신의 인생작으로 꼽았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얼마 전에 와이프와 바람을 쐬러 강릉에 다녀왔는데 몇몇 분들이 웅성웅성하며 저를 알아보시더라. 사인도 해드리고 함께 사진도 찍어드렸다. 정말 신기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미스터 션샤인’ 첫 방송을 앞두고 결혼 소식이 전해졌을 때 ‘윤주만’ 이름 석 자는 종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당시 지인들의 연락을 받고 ‘이게 무슨 일인가’ 벙쪘다는 그다. “댓글을 다 읽어봤었는데 ‘듣보잡’이라는 얘기가 가장 많더라고요(웃음). 저는 그것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당연한 반응이니까요.”

윤주만은 “지금의 상황을 맘껏 즐기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이런 관심은 순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스터 션샤인’을 보셨던 분들이 저를 잊지 않으시도록 최대한 공백을 줄여야 할 것 같다. 다음 작품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털어놨다.

연예계에 발을 디딘 건 18년 전이었다. 2000년 길거리 캐스팅이 돼 잡지 모델 일을 했다. 군대에 다녀오고 2004년부터 소속사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초짜였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였어요.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아요. ‘시크릿 가든’을 계기로 연기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죠.”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다. 윤주만은 “수입이 불안정한 상태로 마냥 배우를 하겠다고 버티고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서른 즈음에 번듯한 직장이 없으니 주변 눈치를 보게 되더라.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엄청나게 고민을 했다.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연기를 계속해 온 건 “너무 하고 싶어서”라고 그는 얘기했다. “현장이 너무 좋아요. 현장에 있을 때 내가 숨 쉬는 것 같아요. 만약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1만% 후회할 것 같았어요. 다른 친구도 똑같이 얘기하더라고요. 후회할 바에는 계속 하라고.”

윤주만은 지금도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고맙게도 촬영 스케줄이 있을 때는 양해를 해준다고 한다. “20대 때 치열하게 살지 못해서 지금 더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윤주만은 “내 모토가 ‘놀면 뭐해’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뭐라도 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라고 했다.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역시 아내다. 7년 연애 끝에 지난 7월 7일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은 달콤한 신혼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지칠 때는 와이프랑 한 번씩 여행을 가요. 그렇게 힐링을 하는 것 같아요. 조금 닭살스러울 수 있지만, 와이프를 보면 피로가 싹 풀리더라고요(웃음).”

차기작은 이미 정해졌다. ‘여우각시별’(SBS)에 출연하게 됐다. 그렇게 또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저는 그냥 편안한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 어느 작품에 어떤 역으로 나오더라도 ‘윤주만’ 하면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드렸으면 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