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축구 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다시 한번 장현수와 김영권 듀오였다.
이들은 12일 우루과이와의 A매치 평가전에서 선발출전하며 팀의 2대 1 승리를 이끌었다. 장현수는 풀타임, 김영권은 77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동안 우루과이에 1무6패로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한국은 8번째 대결 만에 첫 승리를 거뒀다.
이번 우루과이전 승리는 많은 의미가 있다. 작게는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과 색깔을 볼 수 있는 첫 기회이기도 했으며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에서 당한 석패를 설욕했다. 우루과이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위의 강호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전승으로 8강에 진출했으나 우승국 프랑스에 아쉽게 패했다.
이날 우루과이는 그때의 선발명단에서 단 두 자리만 변화를 줬다. 우루과이는 루이스 수아레스와 호세 히메네스가 각각 아내의 출산과 부상으로 결장했으나 이외엔 정예요원이 총출동했다. 한국축구가 독일전에 이어 전 세계 강호들과 힘겨루기를 했을 때 밀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이날 제일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수비의 변화였다. 당초 수비진들의 소폭 변화가 예상됐다. 벤투 감독이 2기 명단을 발표하며 “한 달간 단점을 찾고 잘할 수 있는 방법도 발견했다”며 “공격적인 부분이 수비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수비수들이 열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우루과이전에선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중핵으로 활약한 김민재가 후반 32분 김영권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을 뿐 깜짝 발탁한 경남의 박지수와 기존의 대체자원이었던 정승현은 벤치를 지켰다.
장현수는 이번 대표팀 합류를 앞두고 논란이 많았다. 벤투호 1기로 치렀던 지난달 칠레와의 친선경기(0대 0 무승부)에서 후반 종료 직전 백패스 실수로 위기를 자초했다. 이로 인해 벤투 감독의 눈밖으로 밀렸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변하지 않는 신뢰를 받았다.
장현수는 그러한 신뢰에 묵묵히 응답했다. 수년간 대표팀에서 활약해왔던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다. 언론과 팬들의 공격 속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을 테지만 덤덤히 이겨냈다.
장현수, 논란에 답하다
장현수는 이날 66회의 볼터치 횟수와 58회의 패스 숫자를 기록했다. 양 팀 통틀어 이 부분 1위다. 볼터치와 패스를 각각 53회, 52회를 기록하며 뒤를 이은 기성용보다 더 많은 숫자다. 통계적인 수치를 통해 벤투 감독이 장현수에게 어떠한 주문을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벤투 감독은 빠른 공수 전환을 바탕으로 한 움직이는 축구를 중요시한다. 투박한 몸싸움보단 세밀한 위치선정과 지능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성격이다. 골키퍼와 수비수들은 물론 모든 선수들에게 긴 크로스나 롱볼보다는 짧은 패스로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주문하고 있다. 무엇보다 후방 빌드업은 벤투식 축구의 핵심이다. 장현수는 그 연결고리의 시작과 같다. 센터백뿐 아니라 기성용의 자리를 대체할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소화가 가능하다.
장현수 역시 “최대한 공을 많이 소유한 것은 감독님 지시 사항이었다. 빌드업을 잘하는 기성용, 정우영 두 형을 믿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상대 공격수의 숫자에 따라 변형하며 대처했다. 덕분에 측면에서 공간을 많이 확보해서 좋은 경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볼 수 있다. 빌드업에 가장 큰 강점이 있다. 라인을 올리고 내리는 조율 능력과 미드필더진과의 간격 유지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라인을 올리고 내리는 타이밍을 가장 잘 안다. 측면 풀백이 공격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오버래핑 할 것을 주문하는 벤투 감독에게 이러한 장현수의 장점은 배가된다. 현재 대표팀 중앙 수비수 카드 중 장현수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빌드업뿐만 아니라 수비상황에서도 안정감을 드러냈다. 특히 좌우로 폭넓게 움직이는 에딘손 카바니를 성공적으로 봉쇄해냈다. 장현수는 우루과이전을 앞둔 훈련에서 “다들 아시다시피 카바니는 월드클래스 선수다. 개인적으로 분석해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스스로 뱉은 말을 스스로 지켰다. 벤투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장현수의 활약에 만족감을 표하며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실수를 언급할 필요는 없다. 언급해서도 안 된다. 최근 3경기를 본다면 장현수는 굉장히 높은 수준의 선수다. 평균 수준을 상회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한다. 굉장히 도움이 될 선수다. 그의 플레이에 대해 굉장히 만족한다.”
앞으로도 장현수가 벤투호의 주축으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9월 A매치에서도 클리어링 상황에서 실수를 범하는 등 몇 차례 불안한 모습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한 활약이었다. 그간 실책성 플레이로 집중포격의 대상이 되며 심리적 부담감도 쌓였으나 강인한 멘탈리티로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다. 악몽 같은 월드컵 트라우마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음에도 감독의 부름에 끝까지 달리고 있다.
남은 모의고사는 단 세 차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까지 3달도 남지 않았다. 벤투 감독에게 주어진 첫 번째 본고사이자 시험대다. 한국은 아시아 무대에서 영원한 강호로 꼽히지만 최근 아시안컵에서의 활약은 그렇지 않았다. 번번이 끝자락에서 미끄러지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한국의 마지막 우승은 무려 58년 전인 1960년이다. 아시안컵 우승 시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매우 매력적이다.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얻은 경험은 2022 카타르월드컵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후방에서의 빌드업과 수비적인 조직력 강화를 중시하는 벤투 감독이 아시안컵 이전까지 여러 센터백들을 기용하며 다양한 수비조합을 시도해볼 것이 예상됐으나 장현수와 김영권은 전임 감독인 울리 슈틸리케와 신태용에 이어 벤투호에서도 여전한 입지를 자랑하고 있다.
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만큼 벤투의 장현수와 김영권 기용은 변화보단 안정감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벤투호에게 아시안컵 이전까지 주어진 실전 기회는 단 3차례다. 16일 파나마와의 A매치, 11월 2차례의 A매치가 예정돼 있다. 그런 만큼 갑작스러운 선수단 변화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10월과 11월 A매치에 나서는 선수들은 아시안컵을 위해 압축된 정예 요원이라 할 수 있다.
장현수는 2016년 이후 A매치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선수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10경기 동안 총 1123분을 활약했다. 사실상 풀타임이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전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그에 따라 벤투 감독은 장현수를 9월 A매치에서도 핵심 전력으로 중용했다. 몇 차례 실책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중심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함께 발을 맞추며 훈련한 시간이 중요한 만큼 장현수는 현재 벤투호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어쩌면 벤투호가 장현수를 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부주장직을 스스로를 내려놨을 정도로 악몽으로 떠오르던 실책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면 말이다. 대표팀에서 기성용과 김영권을 이은 고참 선수로서 자신을 향한 논란에 스스로 답할 때다.
송태화의 인저리타임
인저리타임. 전광판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송태화 기자가 함성소리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전하는 스포츠 연재입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