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젠지는 소년만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입력 2018-10-14 07:00 수정 2018-10-14 07:00
젠지 미드라이너 ‘크라운’ 이민호.

‘가을의 팀’ 젠지(한국)가 또 한번 롤드컵 등정에 나선다.

젠지는 14일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5일 차 일정을 소화한다. 이날 대회는 젠지를 비롯한 B조 네 팀이 각각 한 차례씩 맞붙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8강에 오를 수 있는 건 상위 두 팀뿐이다.

현재 B조는 로열 네버 기브업(RNG·중국) 독주 체제다. RNG는 첫 주차 경기에서 3전 전승을 달성했다. 1승만 더 거둬도 조 1위를 확정한다. 젠지, 클라우드 나인(C9·북미), 팀 바이탈리티(유럽)는 1승2패로 동일 승수를 기록 중이다. 세 팀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전망된다.

궁지에 몰린 젠지. 어딘가 익숙한 어구다. 가을이면 반드시 소년만화 식 기승전결을 따랐던 까닭이다. 이들은 늘 지역 대표 선발전을 통해 막차 티켓을 따냈고, 그룹 스테이지에서는 한두 차례씩 해외 팀에게 덜미를 잡혔다. 하지만 결과는 대회 준우승과 우승이었다. 올해도 늦은 시동걸기를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경기는 그룹 스테이지에서만 3년 연속으로 만나는 RNG와의 리턴 매치다. RNG는 2017년 대회와 올해 11일 첫 대결에서 젠지에게 패배를 안겼다. 여기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결승전에서 ‘룰러’ 박재혁과 ‘코어장전’ 조용인을 꺾고 금메달을 가져간 중국 국가대표팀 선수들도 대거 포진해있다. 빚이 쌓일만큼 쌓였다.
젠지 정글러 ‘하루’ 강민승.

그간 결과를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조용인은 지역 대표 선발전이 한창이던 지난 9월 인터뷰에서 “(아시안게임 예선) 첫날 중국전을 이기고 ‘오늘 하루는 행복하겠구나’ 생각했다. 둘째 날도 이기고 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승전을 지니 하루가 아니라 평생 아쉬움과 후회가 남을 것 같더라”라고 털어놨다. 그때 그 감정을 이날 그대로 갚아주면 된다.

물론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선 후반 집중력을 개선해야 한다. 젠지는 전 경기인 10일 팀 바이탈리티전과 11일 RNG전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노출했다. 두 경기 모두 초중반 리드를 잡았지만 후반에 접어들면서 고꾸라졌다. 장기전이라면 LCK 내에서도 톱을 다투는 젠지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젠지 선수단도 이를 자각하고 있다. 조용인은 집중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그는 11일 RNG전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피드백 방향과 관련해 “계속해서 유리한 게임을 역전당하고 있다”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집중력과 체력은 맞닿아있다. 그리고 젠지 선수들의 신체·정신적 피로감은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여름을 보냈다. 최우범 감독, 박재혁, 조용인은 6월과 8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일정을 소화했다. 9월에는 지역 대표 선발전을 1라운드부터 3라운드까지 치렀다. 두 번이 풀 세트 접전이었고, 매 경기가 치열했다.
젠지 서포터 ‘코어장전’ 조용인.

그래도 선수들은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옆자리 동료를 걱정한다. 박재혁은 12일 C9전 이후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바빠야 좋다는 마인드여서 힘들지 않다”며 “저보다는 (조)용인이 형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용인이 형도 아시안게임을 함께 소화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것”이라며 “끝까지 함께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이들은 삼성 갤럭시라는 이름으로 롤드컵을 들어 올렸다. 선수들은 우승 세리머니 직후 트로피를 들고 인터뷰룸에 입장, 상기된 표정으로 전 세계 기자들과 마주했다. 그때 한 외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조용인의 답변은 인상적이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은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유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늘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방금 질문처럼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말을 원동력 삼았다. ‘그럼 보여주겠다’는 태도로 준비하고, 그 저평가를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2년간 젠지의 소년만화는 해피엔딩이나 그에 준하는 결말로 끝을 맺었다. 세 번째 가을, 젠지는 놀라울 만큼 작년과 비슷한 평가를 받고있다.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다. 이들은 올해도 위기를 극복하고, 또 한번 웃으며 책장을 덮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오늘도 멋지게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부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