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떠난 무명 연습생, 2년 만에 ‘꿈의 무대’ 섰다

입력 2018-10-13 23:29 수정 2018-10-14 00:15
G2 서포터 ‘와디드’ 김배인. 라이엇 게임즈

파란만장한 지난 2년이었다.

2016년 10월, 그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승격이 좌절된 팀 연습생이었다. 당시 그를 아는 팬은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마저도 프로게이머가 아닌 ‘바드 장인’으로 기억하는 이가 더 많았다. 팀은 얼마 안 가 해체됐고, 그는 프로게이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2017년 10월, 그는 유럽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십 시리즈(EU LCS) 중위권 팀인 로캣에서 두 시즌을 소화한 뒤 귀국한 상태였다. 슈퍼플레이 후 ‘댑’ 포즈를 취하는 노란 머리 한국인 용병. 영어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그의 소환사명이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했다.

2018년 10월, 그는 유럽 명문 프로게임단 G2 e스포츠 일원으로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을 찾았다. 생애 첫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무대를 밟았다. 2년 전 무명 연습생이었던 그. 어느새 무대 인사에서 가장 많은 환호를 이끌어낸 외국 팀 소속 선수 중 한 명이 됐다.

그는 G2 서포터 ‘와디드’ 김배인이다.
G2 서포터 ‘와디드’ 김배인. 라이엇 게임즈

13일 2018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 4일 차 일정이 한창이던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김배인의 소속팀 G2는 ‘대만의 맹주’ 플래시 울브즈를 꺾고 대회 2승(1패)째를 거뒀다. 이로써 두 팀은 A조 공동 1위가 됐다.

플래시 울브즈의 넥서스를 부순 뒤 인터뷰실을 찾은 김배인은 “준비했던 게 착착 들어맞았던 경기였다”며 웃었다. 그는 “플래시 울브즈는 탑·미드에 탱커를 세우고 바텀 캐리를 추구하는 팀이다. 그에 대한 돌파구를 준비했는데 잘 먹혔던 것 같다”고 경기를 총평했다.

G2와 자신 모두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고 김배인은 밝혔다. 그는 “패배했던 퐁 부 버팔로(베트남)전날 외에는 모두 컨디션이 괜찮다. 큰 무대는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다. 저는 첫 대회지만 이제 긴장이 많이 풀려 조금 편해졌다”고 말했다. 선수단 모두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라고 김배인은 귀띔했다.

G2가 속한 A조는 15일 8강 진출 팀을 정한다. 김배인은 컨디션 관리와 밴픽 준비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그는 “첫 주차도 중요하지만 모든 게 결정되는 마지막 날도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컨디션 관리에 중점을 두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또 “밴픽도 신경 써야 한다. 하루에 세 팀을 상대하는 만큼 확실하게 준비해야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와 롤드컵에 관해 얘기하면서 불현듯 작년 이맘때쯤이 떠올랐다. 비시즌을 집에서 보내다 잠시 상경했던 그와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롤드컵이 한창이었다. 하지만 롤드컵은 유럽 중위권 팀 서포터와 연관이 없었다. 인터뷰 장소는 중국이 아닌 신도림이었다.

“요즘 롤드컵은 보나요”란 질문과 함께 자연스레 대화 주제가 롤드컵으로 넘어갔다.

그때 김배인은 이렇게 말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수끼리 친해져서 연락을 자주 하거든요. 롤드컵에 가 있는 ‘이그나’ 이동근이나 ‘익스펙트’ 기대한, ‘트릭’ 김강윤 소식을 가까이서 들어요. 부럽기도 하고 시샘도 나죠. 저는 아예 롤드컵에 가보지도 못했잖아요.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아요. 솔로 랭크 연습도 정말 하기 싫은데 꾸준히 하게 돼요”

그리고 1년이 지나서 김배인은 정말로 갈망하던 롤드컵 그룹 스테이지를 밟았다.
G2 서포터 ‘와디드’ 김배인. 라이엇 게임즈

때마침 무대도 자신의 고향인 부산이다. 전용준 캐스터는 김배인을 “우리 부산 사나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무대 인사에서 큰 환호를 받았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박수 소리는 김배인이 지난 3년간 조명 없는 무대와 타 대륙에서 묵묵히 쌓아온 성과에 대한 보상 차원이었다.

“다른 팀원들에겐 함성 소리가 크지 않았는데요. 제 소개 차례가 되니 팬들께서 큰 환호를 보내주셨어요. 저는 막상 한국에서 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때 정말 내 고향에서 경기한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때문에 조금 더 재밌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김배인은 무대 인사 때를 회상하며 웃었다. 그런 김배인의 성장 동력은 단순하다. 노력이다. 그는 2016년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활동할 때까지도 솔로 랭크 점수가 다이아몬드 티어에 불과했다고 한다.

“모든 프로게이머들이 평탄한 길을 걸어오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힘드니까요. 하지만 저는 정말 ‘익스트림’한 경우죠. 챌린저스에서 활동할 때까지도 혼자 다이아였으니까요. 노력해온 것도 있지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더 노력하려고 합니다”

2년 전 무명의 연습생은 15일 팀의 첫 8강 진출 여부를 놓고 펼쳐지는 그룹 스테이지 마지막 경기에 나선다. 김배인은 “LCK와 한국 팬들에게 처음으로 프로게이머로서 모습을 보여드린다”며 “꼭 좋은 인상을 남겨드리고 싶다”는 각오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부산=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