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뮤지션 샘 스미스가 9일 저녁 현대카드 초청으로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졌습니다. 콘서트에서 스미스는 한국을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습니다. 아래 원고는 이 공연을 관람한 음악평론가 김도헌씨가 보내온 글입니다.
제목 그대로 ‘모든 전율(The Thrill of It All)’이 있었다. 9일 고척스카이돔을 꽉 채운 2만 관객이 은혜롭고도 충만한 샘 스미스의 목소리를 통해 120분 동안 느낀, 경건한 황홀 말이다.
‘더 스릴 오브 잇 월드 투어(The Thrill of It World Tour)’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이 젊은 싱어송라이터는 힘 있는 노래와 진중하고도 쾌활한 매력으로 쌀쌀해져 가는 가을밤을 가득 채웠다.
샘 스미스는 에드 시런, 마룬 파이브와 더불어 젊은 음악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팝 가수다. 1992년생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호소력 짙은 보컬과 친근한 멜로디의 소울 음악을 선보이는 그는 2014년 데뷔 앨범 ‘In The Lonely Hour’로 제 57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4개 주요 부문 중 3개 부문(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올해의 신인)을 거머쥔 바 있다. 한국에서도 ‘Stay with me’, ‘Lay me down’ 등의 히트곡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송’으로 자리매김했다.
내한 일정이 공지되고 현대카드 회원 선예매 1분 만에 매진, 이후의 일반 예매도 매진되며 일찍이 그 인기는 예측되었던 터였다. 실제로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역시 가족 단위, 연인, 친구 등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팬층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공연 사전 진행한 이벤트에도 활발한 참여가 몰렸다. 내한 이틀 전 종로와 광장시장을 구경하는 그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후 7시15분쯤 공연장의 모든 불이 꺼지고 하늘색 수트를 입은 샘 스미스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넘실거리는 리듬의 ‘One last song’으로 상냥한 인사를 건넨 그는 곧바로 ‘I’m not the only one’으로 한국의 ‘떼창 문화’를 경험했다. 해맑은 웃음과 함께 곡을 마친 샘 스미스는 “이틀 동안 서울을 구경하며 한국이 아주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장을 여러분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며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고요를 뚫고 찬란히 빛나는 샘 스미스의 목소리는 ‘하늘로부터 받은’이라는 수식어 외 다른 단어가 필요치 않았다. 여린 피아노 선율 위 고뇌하는 ‘Lay me down’의 애절함, 영화 ‘007 스펙터’ 주제가 ‘Writing on the wall’의 웅장함, 2013년 EP 수록곡 ‘Nirvana’의 환희 등 인간의 거의 모든 감정이 있었다. 팔세토 고음과 웅장한 저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그의 재능은 경탄 그 자체였다. 공연 이틀 전부터 섬세히 조율한 음향과 튼튼한 백 밴드 연주 역시 깊은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했다.
공연 중간 샘 스미스는 ‘제가 슬픈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라 농담을 던졌다. 진중한 소울 음악을 주로 하는 아티스트다 보니 공연도 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 공연은 그런 편견을 깨트리는 다채로운 구성으로 빛났다.
이번 월드 투어를 함께하는 거대한 삼각 구조물은 곡마다 형형색색 빛을 내뿜으며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중 ‘Writing on the wall’에서 차가운 달빛과 함께 천천히 갈라지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국의 하우스 듀오 디스클로저(Disclosure)와 함께한 히트곡 ‘Omen’과 ‘Latch’, 흥겨운 디스코 리듬의 ‘Restart’으로 아기자기한 댄스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팬들도 객석에서 일어나 흥겹게 박수를 치고 리듬을 타며 젊은 가수의 열정을 함께했다.
과거 곡들로 꾸린 전반부를 거쳐 후반부는 지난해 발매된 정규 2집 ‘The Thrill of It All’의 수록곡들이 주를 이뤘다. 흥겨운 ‘Baby, you make me crazy’와 조곤조곤한 ‘Say it first’, 블루지한 기타 연주와 보컬, 코러스 간의 호흡이 빛난 ‘Midnight train’은 차분한 1집으로부터 더욱 확장된 그의 음악 세계를 친절히 소개했다.
‘HIM’은 샘 스미스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용감하게 전달한 무대였다. 한 편의 뮤지컬을 방불케 했던 조명과 댄서들 앞에서 샘 스미스는 여느 때보다 힘찬 목소리로 신 앞에 자신의 동성애 지향을 고백하는 노래를 불렀고, 정점의 순간에서 자랑스럽게 외쳤다.
“여러분들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Too good at goodbyes’와 앵콜곡 ‘Palace’, ‘Stay with me’의 합창을 거쳐 ‘Pray’로 두 시간짜리 공연이 막을 내렸다. 사이드 스크린에 올라오는 긴 크레딧은 월드 투어 최초의 스타디움 공연, 최초의 내한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완벽한 공연을 위한 스태프들의 노고를 대변했다.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귀갓길 조심하시고 감사합니다!’라는 샘 스미스의 멘트 하나하나에서 마지막까지 섬세한 배려가 묻어났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더더욱 듣고 싶은 목소리. 공연 내내 환한 표정으로 재능과 배려, 용기와 감동을 노래한 샘 스미스의 무대는 아름다웠고 또 열정적이었다. 청년의 진실되고도 맑은 목소리는 2만 관객의 가슴속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