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인 풍등 때문?… 저유소 관리 부실이 火 키웠다

입력 2018-10-09 18:07 수정 2018-10-10 08:52

“1000원 짜리 풍등 하나 때문에 43억원이 날아갔다.”

고양시 유류저장고 폭발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9일 화재 원인으로 외국인 근로자가 날려 보낸 풍등을 지목하면서 재발 방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한송유관공사의 저유소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화재 원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풍등 등을 철저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이날 오전 저유소 폭발 사고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중실화 혐의로 긴급 체포된 스리랑카인 근로자 A씨(27)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며 A씨가 풍등을 날려 보내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이 공개했다.

A씨는 지난 7일 오전 10시32분쯤 고양시 덕양구 강매동의 터널공사 현장에서 풍등을 날려 300m 가량 떨어진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내 휘발유 저장탱크 1기에 폭발 사고를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CCTV 46대 돌고 있었지만 18분 동안 아무도 몰랐다

경찰 조사 결과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은 사고 전날 현장에서 800여m 떨어진 인근 초등학교 행사에서 띄워 보낸 풍등 중 하나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공사장 인근에 떨어진 풍등을 주워 다시 불을 붙여 날려 보냈다.

경찰은 증거자료로 A씨가 풍등을 날려 보내는 모습과 풍등이 저유지 잔디에 떨어진 뒤 발화 장면, 탱크가 폭발하는 장면 등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다.

A씨가 날린 풍등이 10시36분쯤 저유지 내에 떨어진 뒤 잔디에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불씨가 18분 뒤 바람을 타고 저유소 유증기 배출구로 들어가 폭발이 발생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사고 발생 하루 만에 피의자가 특정돼 검거됐지만, 실제 중실화 책임을 지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한송유관공사의 관리 부실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저유소 폭발 사고는 풍등이 잔디에 떨어진 지 18분 지난 10시54분에 발생했다. 유류 저장탱크 주변에는 46대의 CCTV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직원들은 서서히 추락하는 풍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물론, 잔디에서 화재 발생한 후 폭발까지 18분 동안 화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풍등이 떨어진 저장탱크 주변 잔디밭에 설치된 소화 장치 2개 중 1개는 고장 나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장치가 정상 작동했다면 풍등이 낙하한 뒤 잔디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상황에서 불씨를 잡을 수도 있었다.

경찰이 불티가 들어가 폭발로 이어졌다고 추정하는 유증기 배출구 관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유증기 배출구에는 ‘인화방지망’이 설치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씨가 들어오면 곧바로 꺼지게 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치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소방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풍등 등 소형 열기구, 사전 신고 없으면 못 막아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 같은 소형 열기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소형 열기구는 지난해 소방법이 개정되면서 올해부터 사용이 금지됐지만, 아직도 각종 행사에서 풍등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소방본부장이나 소방서장은 풍등 날리기 행사를 제한 할 수 있지만 사전에 신고된 행사가 아닌 경우에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에 풍등 등 소형 열기구 판매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풍등이 1000원 안팎에 팔리고 있다. ‘화재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 문구가 적혀 있지만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당 저유소는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산불 발생 시 이번과 동일한 사고에 그대로 노출될 수 있는 상태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풍등의 작은 불도 (저장탱크) 인근에만 떨어졌다라고 하면 충분히 그게 발화원이 될 수 있다”면서 “현재로서는 어려운 확률이지만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대형 화재가 재연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 폭발 사고로 인해 직경 28.4m, 높이 8.5m 규모의 옥외 휘발유 저장탱크 1기와 내부에 있던 휘발유 260만ℓ가 소실돼 소방서 추산 43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