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배달음식 시키는 것,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입력 2018-10-10 05:00
제21호 태풍 제비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지난달 4일 일본 트위터에 공개된 영상 중 일부를 갈무리한 사진이다. 일본 오사카 한 지역에서 피자 배달부가 강한 바람에 쓰러져있다. 트위터 캡처

지난 여름, 장대비가 쏟아지던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배달통을 맨 채 빗길을 미끄러지듯 곡예 주행을 하는 모습이 아찔하기만 했다. 제대로 된 기상상황 관련 매뉴얼이 없어 배달부들이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미안해서 못 시킨다” VS “소비자가 판단할 일 아니야”

9일 온라인 커뮤니티엔 “폭우에도 배달 음식을 시키는 사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글이 올라와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B씨는 최근 비가 많이 오는 상황에서도 배달음식을 시키려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에게 “실시간으로 피해상황이 보도되고 있는데, 꼭 빗길 운전을 하게 해야 하냐”고 지적했고, 아버지는 “장사하는 입장에선 더 팔아야하니 상관 없다”고 받아쳤다.

이를 두고 네티즌은 “장사하는 사람은 상관없겠지만 배달하는 사람의 안전이 걱정된다” “인간적으로 비 오는 날엔 도저히 못 시켜먹겠더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건 B씨가 상관할 게 아니다” “배달 못할 상황이면 업주가 알아서 취소한다”는 반응도 있었다.

특히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네티즌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주문해주시면 언제든 감사합니다만 간혹 늦는다고 항의하는 분들이 있어 곤혹스럽다”며 “말이라도 ‘천천히 와도 된다’ ‘조심히 오시라’고 해주시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적었다.

◇ 폭우 앞에 무릎 꿇은 배달부

좋지 않은 기상상황에도 배달을 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지난 5일 오후 강원 춘천은 태풍 ‘콩레이’가 뿌린 비로 흠뻑 젖었었다.

춘천 효자동에서 한 프렌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A씨는 “우천 시엔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린 뒤 배달을 보낸다. 그런데 가끔 ‘왜 안 오냐’ ‘당장 안 오면 주문을 취소하겠다’는 항의 전화가 걸려온다”며 “그럴 땐 서둘러 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하소연했다. 며칠 전 빗길 항의 전화를 이기지 못하고 출동한 A씨네 치킨집 배달부는 결국 빗길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지난달 일본에선 배달부가 피자를 배달하던 도중 강풍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자 “목숨을 담보로 배달하는 것” “업주는 반성해야 할 것”이라는 반응이 줄을 짓기도 했다.

◇ 비오는 날 교통사고율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천 시 교통사고율은 맑은 날보다 40% 이상 높고, 사망률은 눈이 올 때보다 10배 이상 높다. 빗길에서의 제동거리는 마른 노면보다 1.5배 이상 길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이 지난 5년(2013~2017년) 동안 기상상태별 교통사고 발생 현황을 집계한 결과 전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망자 2만2952명 중 2008명(8.75%)은 비 오는 날 교통사고로 숨졌다. 또 비 오는 날 발생한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총 8만758건으로 전체 교통사고(110만8193건)의 7.3%를 차지했다.

◇ 장마철 최악의 아르바이트, 이유는?

장마철 최악의 아르바이트 1위는 ‘배달 아르바이트’라고 조사됐다. 한 취업사이트가 2일부터 4일까지 아르바이트생 총 116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장마철 아르바이트’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장마철 극한 알바’ 1위는 ‘오토바이 등 배달 아르바이트(49.1%)’였다. 빗길 사고 위험이 높은 탓이다.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13년부터 6년간 장마철 극한 알바 1위에 계속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배달부 대부분이 듣고 싶은 말은 거창하지 않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전부다. 이태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6)씨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해서 아들을 배달을 시키고 있지만, 고개 숙여 가게 문을 여는 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주문하시는 고객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분들도 내 아들딸들이 힘든 환경에서 일한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형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