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창제자가 분명한 독특한 문자다. 하지만, 정작 그 창제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세종대왕이 몸소 창제했다는 ‘친제설’과 다른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창제했다는 ‘창제협찬설’이 비등하게 맞선다. 국문학계에선 ‘친제설’이 국사학계에선 ‘창제협찬설’이 우세하다.
훈민정음, 누가 만들었을까?
지난 5일 한글문화연대는 세종대왕이 직접 한글을 창제했다며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인식은 달랐다. 국민들에겐 친제설보단 창제협찬설이 더 퍼져있었다. 10명 중 2명만 세종대왕이 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가 함께 만들었다는 응답은 무려 55.1%로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는 지난 5일 리얼미터가 한글문화연대 의뢰로 9월 13~14일 전국의 성인 남녀 1002명을 조사한 결과다. 국립한글박물관 김선철 연구교육과장은 “한글문화연대에선 한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건데 학계에선 두 가지 주장으로 나뉘어 있다”며 창제 주체를 확정짓지 않았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홀로 만든 것이다?
세종대왕이 손수 제작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세종대왕의 뛰어난 음운학 능력과 여러 기록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에는 ‘내 이를 위하여 불쌍히 여겨 새로 28자를 만드노니…’라며 세종대왕 자신이 직접 썼다고 밝힌 구절이 나온다. ‘세종실록’에도 ‘세종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기문 교수는 실록에서 유일하게 훈민정음만 ‘친제(親制)’ 표현을 쓴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서 집현전 학사들이 임금이 창제했다고 밝히고 있다. ‘최만리 반대 상소문’에서도 어제(御製)를 인정하고 있다.
또 세종의 언어능력도 근거가 된다. 신숙주 등 여러 자료에서 세종의 학문 능력을 칭찬하고 있다. 스스로도 언어능력을 인정했다. 최만리가 반대 상소를 올렸을 때 세종은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사성과 칠음을 알며 자모는 몇이나 있는지 아느냐.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을것이냐…”라며 음운학연구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실제로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서의 종성표기는 훈민정음을 창제할 능력은 세종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한재영 한신대 국어학 교수는 “기록으로보나 정황으로 보나 친제설에 더 무게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덧붙여 “다만 혹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그걸로 세종대왕의 업적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강조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과 협조자들이 함께 만든 것이다?
비친제설은 새로운 문자 창제를 혼자서 하기엔 어려웠으리라는 것과 왕이란 지위가 갖는 힘이 있는데 혼자서 하지 않았을 거라는 의구심에서부터 시작한다.
조선 초기 문신 성현이 쓴 수필집 ‘용재총화(慵齋叢話)’ 7권에선 세종이 언문청을 세워 신숙주, 성삼문 등에게 글을 만들도록 명을 내렸다고 밝힌다. 주시경이 작성한 ‘대한국어문법’(1906)에서도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숭녕 국어학자는 당시 세종대왕이 유신들의 반대를 피해 비공개리에 일부 측근의 학자들을 주로하여 훈민정음 창제를 추진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최만리의 반대상소문이 그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안병희 국어학자는 사료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한글 창제는 세종과 집현전 8학사들의 협찬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왜 국민들은 10명 중 2명만 세종대왕이 직접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을까?
이는 사회·역사 교과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공동창제설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교 역사 교과서 16종 중 10종(62%)이 훈민정음을 세종과 집현전 학자가 공동창제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현 초등 5학년 사회 국정교과서에는 “훈민정음(한글)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직접 만들어 반포하였으며....”(143쪽)라고 적혀있다.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배우는 국정교과서에서 공동창제설이 명시 돼 있어 현 초등학생들도 공동창제설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슬비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