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 낯선 그 사람, 제발 살려주세요’
지난해 9월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던 글과 사진이다. 피해자 A씨는 창문 너머로 자신을 지켜보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올리며 “창문에 낯선 남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10분 넘게 쳐다보다 창문을 (강제로) 열려고 한다”고 적었다. 이후 A씨는 경찰에 그를 신고했다. 검거된 범인은 40대 남성이었다. 그는 “A씨가 너무 예뻐 쳐다봤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를 주거침입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다만 “관음 행위 자체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 헐벗고 찾아온 변태’가 공분을 샀다. 피해자 B씨에 따르면 해가 진 뒤 누군가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CCTV를 통해 확인해보니 나체 상태 남성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같은 층에 살고 있었다. B씨 집 앞을 기웃거리면서 수차례 문을 열려고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조치할 수 있는게 없다”며 과태료만 부과하고 돌아갔다.
◇ ‘혼자 사는 여자’는 왜 범죄 대상 돼야 하나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이 한창이다. ‘혼자 사는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2015년 발간된 사진집 ‘자취방’이 최근 다시 화두로 떠오르며 시작됐다. 혼자 사는 여자를 성적대상으로 표현한 것에 격분한 여성들이 해시태그를 달며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여자 혼자 산다는 이유로 각종 범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터무니 없는 주장일까. 강지현 울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33세 이하 1인 가구 주거침입 피해 가능성을 성별로 비교해보니, 여성이 남성에 비해 11배 이상 높았다”고 말했다. ‘여성만의 피해망상 아니냐’는 조롱, ‘혼자 사는 여자가 매력있다’는 농담 속에서 여성 자취방에 대한 은밀한 환상이 실제 범죄로 이어졌다는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 “우리가 겪는 두려움은 피해망상이 아닙니다”
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여자들의 자취방 이게 진짜 피해망상인가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한 여성을 비하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있다.
글쓴이는 “한 페이스북 게시물에 달린 댓글이다. 난 자취하는 여자고 살면서 여러가지 일을 겪었기 때문에 공감하면서 봤다. 하지만 어떤 남성분이 저런 댓글을 달았다. 이게 진짜 피해망상인가”라는 글과 함께 캡쳐본 한 장을 올렸다.
사진을 살펴보니 “우리 집은 대문 앞에 CCTV까지 달려 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기웃거리면 집주인 아주머니가 대번에 인터폰으로 ‘누구신데요!!! 무슨 용건이세요!!’라고 소리 질러 주신다. 주인 집도 딸이 둘이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혀있는 게시물에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가 “피해망상”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해당 게시물에 여러 사연이 모였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절대 피해망상이 아니다”라는 식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
한 글쓴이는 “(범죄를 두려워하는) 여자한테 문제가 있는 양 몰아 붙이고, 남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는 거냐’며 불쾌해 하는데 그건 자기가 가해자에 가깝다고 은연 중에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심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잔디밭에 들어가지 말라는 문구를 보고 ‘자신을 잠재적 잔디 파괴자로 보지 말라’고 발끈하지 않으면서, 불법촬영하지 말라는 문구나 불쾌한 신체접촉을 하지 말라는 문구에는 ‘자기를 성범죄자 취급하지 말라’고 발끈하는 남자들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이는 “남자들은 공감을 별로 못 한다. 하지만 절대 피해망상 아니다. 나도 혼자 자취한 지 8년이 됐는데, 배달와서 집 안을 쓱 시선으로 훑는 XX, 혼자 사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XX, 배달하고 돈 받고도 안가고 실실 웃는 XX 등 별 거지같은 일 (다 겪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몇번 겪다보니 점점 조심성만 늘어간다. 요새는 일부러 남동생이 내집에 드나드는 모습을 자주 보이게 한다. 내몸은 내가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자취방이 1층이었는데 겨울에 목욕하는데 김이 너무 서리니까 욕실 작은 창문 정말 아주 조금 열어놓고 했었다. 그쪽으로는 나 말고 올 사람이 없어서 겨울에만 조금 열어놓고 하는데 목욕하다 창문 보니까 어떤 X이 쳐다보고 있었다. 피해망상? 당해보고 그런 소리 해라”라고 비난했다.
어떤 댓글에는 “진짜 당해보면 그 공포 무시 못한다. 자취해본 여성이면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겪었을 거다. 나도 자취하면서 매번 새벽 2시 50분만 되면 발 소리도 없이 누가 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 소리에 잠깨서 벌벌 떨었던 일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너무 무서워서 문 곁에도 못 가고 열릴까봐 안절부절 못했다. 안 당해보면 그 공포 진짜 모른다”고 적혀있다.
범죄를 피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도 공유하고 있다. ▲남자 이름·가명으로 택배받기 ▲현관에 남자 구두 놔두기 ▲남자 목소리 나오는 라디오 틀어놓기 ▲배달 음식 집에서 받지 말고 경비실에서 받기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올리지 않기 등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