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뇌물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77)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여억원을 선고받은 가운데, ‘이팔성 비망록’이 재조명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는 5일 오후 2시쯤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공판에서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인사 청탁 대가로 약 22억6000만원을 지급한 혐의에 대해 19억원 상당만 뇌물로 인정했다.
이팔성 비망록은 이 전 회장이 수년간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이다. 검찰이 지난 8월 7일 열린 공판에서 2008년 1월부터 5월까지 작성된 41장 분량의 비망록 사본을 공개하며 화제가 됐다.
이 전 회장은 2월 23일자에 “통의동 사무실에서 MB 만남. 나의 진로에 대해서는 위원장, 산업B, 국회의원까지 얘기했고 긍정 방향으로 조금 기다리라고 했음”이라고 적었다. 그는 이후 검찰에 위원장은 ‘금융위원장’ 산업B는 ‘산업은행 총재’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인 2008년 3월 7일 당시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은 이 전 회장에게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선임을 제안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원했던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후 이 전 회장은 같은 해 3월 23일 ‘이명박에 대한 증오감이 솟아나는 건 왜일까’라고 썼다. 같은 달 28일에는 ‘이명박과 인연을 끊고 다시 세상살이를 시작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로 괴롭다. 나는 그에게 약 30억원을 지원했다. 옷값만 얼마냐. 그 족속들이 모두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적었다.
이 전 대통령은 이에 “이팔성은 저한테 그런 얘기할 위인도 아니다”라며 “나를 궁지로 몰기 위해서 그렇게 진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재판부는 이 비망록에 대해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봤다. 이 전 대통령은 “이팔성에 대한 거짓말탐지기라도 해보자”고 혐의를 극구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19억원 상당의 뇌물을 인정하면서 비망록을 그 근거로 삼은 것이다.
이후 포털사이트 네이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이팔성이 1위로 등극했다. 비망록에 이 전 회장의 끊임없는 청탁 내용과 원하던 자리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좌절 등이 적나라하게 담긴 데다가, 이 전 대통령이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던 만큼 네티즌 관심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