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이 별세했다. 향년 54세. 불과 두달 전 산문집을 출간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기에 그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다.
허 시인의 위암 투병 소식이 국내에 알려진 건 지난 2월이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시인이 개정판 출간을 위해 편집자이자 동료 시인인 김민정 ‘난다’ 대표에게 자신의 몸 상태를 알리고 나서부터다.
허 시인은 당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세상에 뿌려놓은 제 글 가운데 제 손길이 다시 닿았으면 하는 책들을 모아 빛을 쏘여달라”고 당부했다. 개정판 서문에는 “남은 나비같은 시간들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롭다”고 썼다.
김 대표는 복수의 매체를 통해 “시인이 머무는 그곳, 독일의 뮌스터에서 홀로 제 생을 정리하고 싶다며 아주 단호하게 그 어떤 만남도 허락하지 않았다”며 “아주 어렵사리 시인과 통화를 하며 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시인으로서의 열정은 뜨거웠다. 허 시인은 2011년 열렸던 시 낭송회에서 꾸준한 작품활동과 독자들과의 만남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잊히는 게 무섭다. 잊지 않고 찾아와 줘서 많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허 시인의 별세 소식에 과거 그가 털어놨던 친부 이야기도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2011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부친이 5년간의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었다.
허 시인은 “아버지를 간호했었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며 “외국으로 떠나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접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허 시인은 경남 진주 출신으로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이듬해 펴낸 첫 시집 ‘슬픈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로 명성을 얻었다. 1992년 독일로 떠난 뒤에도 시집, 산문집, 장편소설 등을 펴내며 꾸준한 작품 활동을 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