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늦잠 좀 자고 싶어요” 몰려드는 관광객에 고통받는 원주민

입력 2018-10-04 14:46 수정 2018-10-04 14:51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감천문화마을'은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뉴시스.

부산의 관광명소인 감천문화마을에 살고 있는 회사원 김모(32)씨는 공휴일이 두렵다. 모처럼 주말에 피로도 풀 겸 느긋하게 늦잠을 자고 싶어도 아침부터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발소리와 떠드는 소음 때문에 쉴 수가 없다. 문화관광의 달인 10월을 맞아 관광객들이 붐빌 것을 생각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2009년부터 부산시 관광형 도시재생 사업으로 시작된 감천문화마을은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주민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도로변 상가나 주택은 집값이 오르고 일감도 생겨났다. 주민들이 떠나가던 동네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구 감소 현상도 주춤해졌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10년간 계속돼온 성장 폐해로 불만이 크다. 소음 공해뿐 아니라 차량 매연과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는가 하면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관광객들 때문에 짜증이 더해지고 있다. 부산시에서는 관광객 증가를 반기고 있지만 주민들은 언론에서 동네 이름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린다.

이처럼 관광객이 동네 혹은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밤낮없이 몰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의 주요 문제점으론 ‘소음 공해’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 저하’가 꼽힌다.

관광허용시간제 도입한 ‘북촌한옥마을’

하루 평균 1만 명의 관광객이 오가는 북촌한옥마을에서는 관광허용시간제를 도입했다. 주거 지역이 관광 명소로 인기를 끌면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른 새벽이나 늦은 밤 관광객의 통행을 제한하고 관광 허용 시간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제한했다.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지정해 허용 시간대 외 관광객들의 마을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지킴이가 투입됐다.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북촌한옥마을 앞에서 북촌한옥마을운영회 회원들이 관광객 방문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벽화 지우고 관광객 줄어든 ‘이화벽화 마을’…오버투어리즘 해소?

3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이화벽화마을에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동네는 발 디딜 틈 없이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한복이나 옛날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커플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5월, 이화동 주민 5명이 벽화 일부를 훼손했다. 더는 이화벽화 마을에서 ‘벽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벽화가 지워진 담벼락에는 ‘조용히’라는 단어가 빨간 글씨로 크게 쓰여 있다.

이화벽화마을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옛날 교복을 입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오버투어리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민 사생활 보호는 물론이고 소음 공해와 쓰레기 처리 등에 대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절실하다.

부산발전연구원 박경옥 연구위원은 ‘오버투어리즘’ 폐해를 막기 위해 ▲방문자 교육 시스템 마련 ▲‘묵음 구역(Silent Zone)’ 설치 ▲‘책임관광’을 유도하는 규제와 관광문화 구축 ▲지속가능한 모니터링 등의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박 위원은 “관광지 내 골목길을 다른 색으로 표시해 묵음 구역을 정하거나 저소음 관광구역을 설정해 관광객들의 정숙한 관광을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의 오버투어리즘 극복 사례를 참고해도 좋다. 연간 2700만명, 매일 7만명 가량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베니스에서는 일일 방문객을 제한하는 의무예약제를 추진 중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관광객에게 시민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를 방문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 책임감에 관한 의식을 고조시키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오버투어리즘은 관광 수용력에 대한 진단 없이 관광객을 받아들인 양적 성장의 결과다. 제주일보에 따르면 심창섭 가천대 교수는 지난 9월 ‘2018 지속가능한 관광을 위한 제주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해 “관광발전의 경제적 편익이 지역주민에게 얼마나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평가하고, 공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나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