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플피디아] 북태평양이 보낸 괴물들… ‘가을 태풍’이 독한 이유

입력 2018-10-02 18:03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인공위성이 9월 28일 촬영한 제24호 태풍 짜미. AP뉴시스

우리나라에서 최악으로 기억되는 태풍은 2002년 제15호 ‘루사’다. 루사는 국가태풍센터 관측 자료에서 악명의 타이틀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재산 피해액 5조1479억원, 하루 강수량 870.5㎜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사망·실종자 수는 246명. 기상관측 사상 인명피해 규모에서 10번째로 많은 숫자다. 21세기 들어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낸 태풍은 오직 루사뿐이다. 루사는 그해 8월 31일 제주도로 상륙해 9월 1일 강원도 속초에서 소멸된 ‘가을 태풍’이다.

1. ‘슈퍼태풍’의 계절은 여름 아닌 가을

태풍은 열대저기압의 한 종류다. 열대저기압은 북태평양에서 태풍, 북대서양에서 허리케인, 남반구에서 사이클론으로 구분된다. 태풍은 대부분 북마리아나제도 주변 해상에서 발생해 한반도, 일본 열도, 중국 대륙, 인도차이나반도로 이동한다. 연간 출현하는 태풍의 수는 25개 안팎이다.

태풍의 절반가량은 계절상 여름에 해당하는 6~8월 사이에 발생한다. 하지만 강풍을 몰아치고 폭우를 퍼부은 ‘슈퍼태풍’은 대부분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이후에 관측됐다. 국가태풍위원회 관측 자료를 보면 여름보다 강력한 가을 태풍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국가태풍위원회는 한반도에 현대식 기상관측이 도입된 190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악의 태풍 피해 10선을 인명, 재산, 하루 최다 강수량, 순간 최대 풍속의 네 항목으로 구분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여기서 인명피해의 3건, 재산피해의 5건, 하루 최다 강수량의 4건, 순간 최대 풍속의 6건은 9~10월 관측 자료다.

한반도에서 하루 만에 500㎜ 이상의 비를 퍼부은 태풍은 2002년 제15호 루사(870.5㎜), 1981년 제18호 아그네스(547.4㎜) 1998년 제9호 예니(516.4㎜)뿐이다. 모두 9월을 걸쳐 한반도를 지나갔다. 순간 최대 풍속 상위 10위권에서 나머지 4건은 9월로 접어드는 8월 28일, 혹은 8월 31일에 발생한 태풍의 관측 자료다.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이 9월 4일 제21호 태풍 제비로 일어난 높은 파도에 침수돼 있다. AP뉴시스

2. 제비·망쿳·짜미·콩레이… 올해도 변함없이 독한 가을 태풍

슈퍼태풍은 올해도 변함없이 9월을 전후로 나타났다. 그 시작은 9월 4일 일본 오사카를 할퀴고 지나간 제21호 태풍 제비였다. 제비는 상륙 시점에서 중심기압 960헥토파스칼(hPa), 최대 풍속 39m/s를 기록했다. 일본 상륙 시점에서 ‘매우 강력’ 수준을 유지한 태풍은 1993년 이후 25년 만에 제비가 처음이었다.

후속주자인 제22호 태풍 망쿳은 9월 7일부터 열흘간 괌, 필리핀, 홍콩을 포함한 중국 남부를 강타했다. 필리핀에 상륙했던 지난 15일 중심기압은 910hPa까지 내려갔다. 중심부에서 930hPa 이하의 기압이 관측되면 매우 강한 태풍으로 평가된다. 당시 최대 풍속은 56m/s로 측정됐다. 바람이 초속 35m로만 불어도 사람을 넘어뜨리고 기차를 탈선시킬 수 있다.

일본은 유독 가을 태풍에 시달렸다. 제24호 태풍 짜미는 9월 30일 밤부터 지난 1일까지 서남부에서 동북부까지 일본 전역을 종단하며 비바람을 몰아쳤다. 이로 인해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됐다. 상륙 시점에서 중심기압은 950hPa, 최대 풍속 43m/s를 기록했다.

이제 제25호 태풍 콩레이가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다. 기상청은 2일 “콩레이가 오후 3시를 기준으로 일본 오키나와 남남동쪽 약 1000㎞ 부근 해상에서 시속 14㎞로 북서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콩레이는 현재 중심기압 920hPa, 최대 풍속 53m/s의 매우 강한 태풍이다. 앞선 가을 태풍들과 마찬가지로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콩레이는 오는 5일 중국 동남부와 오키나와 사이의 해상에서 북동진으로 방향을 바꾸고, 오는 6일 오후 3시 제주도 서귀포 남서쪽 약 170㎞ 부근 해상까지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분석된 이동경로를 보면, 콩레이는 대한해협을 지나갈 것으로 보인다.

제25호 태풍 콩레이의 예상 이동경로. 기상청 그래픽

3. 가을 태풍이 유독 강력한 이유

가을 태풍이 여름보다 강력한 원인은 8월 하순부터 9월 상순 사이에 가장 높아지는 북태평양의 수온에서 찾을 수 있다. 태풍·허리케인·사이클론과 같은 열대저기압은 따뜻한 바닷물을 먹고 자란다. 지나가는 해수면의 온도가 높을수록 강하게 발달한다는 얘기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강석구 박사는 “지난달 북태평양에서 수온이 29도 안팎으로 나타났다.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태풍은 높은 수온의 해수면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강한 에너지를 흡수한다. 지난달 북태평양의 수온은 태풍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북태평양 수온 상승의 원인을 지구온난화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 산하 국가환경정보센터 연구진은 1982~2012년 기상관측 자료를 분석해 태풍 에너지 최대 지점이 30년 만에 적도 주변에서 160㎞가량 북쪽으로 올라간 사실을 발견했다. 위도가 높을수록 상대적으로 차가웠던 북태평양의 수온이 폭넓게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가을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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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강문정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