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이 ‘오타니가 한국과 경기를 할 때 타자로 나오는 게 좋겠느냐, 투수로 나오는 게 좋겠느냐’고 묻더라.”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고문은 2016년 11월 멕시코,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백네트 뒤에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의 타격을 지켜본 적이 있다. 김 고문이 지켜본 그날 오타니는 타석에서 돔구장 천장을 맞히는 2루타를 기록했다.
일본 언론은 자못 의기양양한 태도로 김 고문에게 오타니에 대한 질문을 계속했다 한다. 그때 김 고문은 “타자로 나오는 게 좋다”고 답했다. 타자 오타니가 투수 오타니만큼은 위협적이지는 않다는 판단이었다. 극단적으로는, 타석에 서면 찬스에서 거르면 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오타니는 2015년 프리미어12 대회 개막전과 준결승전에서 한국전에 투수로 나와 호투했었다. 철저히 막힌 한국 타자들은 “분명히 스트라이크였는데 뚝 떨어진다”고 오타니의 스플리터를 놀라워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타니는 홈런 타자보다는 강속구 투수의 이미지로 더 크게 기억된다. 올 초 미국프로야구(MLB) 진출 당시에도 투수로서 더욱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는 타자로서의 성적을 바탕으로도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AL)의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오타니가 타석에서 기록한 0.285의 타율, 22홈런, 61타점은 신인왕 전례들에 비해서도 크게 미흡한 성적이 아니다. 개막 전 시범경기 시즌에는 오타니가 커브에 고전하는 모습에 ‘타격은 고교 수준’이라는 스카우트들의 혹평도 보도됐다. 하지만 속단이었을 뿐이다.
모두가 ‘안 될 것’이라며 고개를 흔들 때 오타니는 방법을 찾았다. 에인절스의 마이크 소시아 감독은 오타니가 일본에서와 대체로 비슷한 스윙을 했지만, 나름대로 폼을 조정하는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취지로 언급한 바 있다. 레그킥의 높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일본프로야구(NPB)에서보다 빨라진 직구, 예리해진 변화구에 대처했다는 얘기다. 오타니 스스로도 “많은 이들이 타격 폼을 바꾼다. 앞으로도 좋은 느낌을 위해 다른 걸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MLB에서 볼 수 없었던 수준이다. 앞으로도 항상 기억할 것 같다.” 에인절스의 빌리 에플러 단장은 2일(한국시간) 오타니가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는 소식을 공식 발표하며 오타니의 첫 시즌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말했다. 한 시즌에 10차례 이상 투수로 등판하면서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MLB 역사상 베이브 루스와 오타니, 둘 뿐이다. 소시아 감독도 “오타니가 해낸 일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라는 말로 오타니의 데뷔 시즌을 칭찬했다.
오타니의 공과 직접 싸웠던 김 고문은 “다나카, 우에하라, 다르비슈 등 많은 일본인 선수들이 스플리터를 잘 던지지만, 오타니의 것이 가장 강력하고 빠르게 떨어진다”고 평가했었다. 수술 때문에, 이 강력한 스플리터는 내년 시즌에 볼 수 없다. 다만 에인절스는 오타니가 다음 시즌 풀타임 지명타자로 출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오타니는 수술 전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프링캠프 이후 내가 진정으로 느낀 한 가지는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보다 이곳에서 내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