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는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도심 가로수다. 은행나무는 추운 날씨나 매연에도 잘 견디고, 병충해에도 강해 국내 도심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잎은 도심의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목재로서 가치도 높고 열매인 ‘은행’과 은행잎 추출물은 한방에서 오래 사용해온 좋은 약재다. 이렇게 은행나무는 버릴 게 하나 없는 고마운 자원이지만 1년에 딱 한 번 ‘골칫거리’가 될 때가 있다. 바로 은행이 익어 길거리로 떨어지는 순간 시민들은 특유의 은행 악취에 시달려야 한다.
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은행 열매를 치워달라는 민원이 각 지자체에 쇄도하는 중이다. 은행 열매 쓰레기는 지자체의 청소 담당자가 치우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떨어지는 은행을 종일 치우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은행나무에 달린 은행을 다 털어내는 게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은행을 ‘치워달라’는 민원보단 ‘털어달라’는 민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은행을 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는 높이 때문에 전문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통상 지자체의 가로수 관리 부서에서 담당한다. 문제는 한정된 인력과 장비에 비해 민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나무 가로수와 인접한 상점들의 민원이 많다.
서울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ㄱ씨는 “손님들이 은행을 밟은 채로 매장에 들어오면 매장 곳곳에 냄새가 스며든다”며 “한두 번이면 치울 수 있지만 손님이 많이 드나드는 매장의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ㄱ씨도 그래서 최근 서울시에 은행을 털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고 밝혔다.
민원이 늘면서 지자체의 손길이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ㄱ씨의 민원만 해도 1주일을 넘겨서야 장비와 인력이 도착했다. 편의점 인근 은행나무 작업을 하러 나온 한 관계자는 “민원이 너무 많아 제때 은행을 털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매년 은행 민원에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 대응하는 중이다. 일부 지자체는 은행이 떨어지는 시점에 공개적으로 은행을 ‘털어갈’ 시민들을 모집하기도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수거한 은행을 복지기관 등에 기증하는 곳도 있다. 길가에 떨어진 은행을 개인적으로 수거해 이용해도 법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허가를 받지 않고 가로수 은행을 채취하는 경우 다치거나 가로수를 상하게 할 수 있어 처벌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도심 가로수의 은행은 먹을 수 있을까. 매연에 강한 은행나무인 만큼 은행 열매 역시 오염에 강하다. 서울시 등 각 지자체가 최근 실시한 은행 열매 안전조사를 보면 대부분의 도심 은행나무 열매가 식용 가능한 안전한 수준으로 조사됐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