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전직 대법관 4명을 압수수색하며 재판거래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또 다른 핵심 의혹인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는 제자리걸음이다. 법원행정처는 의혹 규명에 필수적인 법관 인사 자료를 검찰에 여전히 제출하지 않고 있다.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 행정처가 진보 성향 법관 등 특정 법관에 대해 노골적·조직적인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게 골자다. 이를 확인하려면 당시 행정처의 법관 평가 내역 등 광범위한 인사 자료가 필수적이다. 현 행정처는 인사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일부 법관의 인사 자료만 제한적으로 제출하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제한적 자료로는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법관 평가 내역 및 인사 조치 자료 등을 비교 분석할 수 있어야 관련 의혹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1일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협조 공언이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행정처는 검찰 수사 초기부터 ‘민감하다’는 이유로 법관 인사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었다. 법원은 이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행정처는 재판거래 의혹 진상 규명에 필요한 대법원 재판연구관 보고서도 2∼3건 정도 건네줬을 뿐 더 이상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달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사협조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비협조 기조는 안철상 현 행정처장의 ‘뜻’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안 처장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조사단을 꾸려 블랙리스트 의혹 3차 조사를 진행했다. 1, 2차 조사 결과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서다. 특별조사단은 석 달 간의 조사 끝에 “특정 법관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으로 인사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 각종 자료를 요청했으나 인사 기밀에 속하거나 개인 정보가 드러날 위험성이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내부 자료 확보도 하지 않고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검찰 수사로 ‘양승태 대법원’의 조직적 인사 불이익 조치가 확인되면 안 처장은 부실 조사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와 반대되는 내용이 수사를 통해 밝혀지는 것을 안 처장이 원하겠느냐”고 지적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