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헬멧 의무 착용이 28일 처음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자 대부분은 헬멧을 쓰지 않았고, 헬멧 의무화 시행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서울시 공공자전거 서비스 ‘따릉이’ 이용자들의 경우 “자기 헬멧도 귀찮아서 안 쓰는데 다른 사람 땀이 묻은 헬멧을 누가 쓰느냐”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은 어떨까요? 서울시에 따르면 대다수 국가에서는 자전거 헬멧 착용이 법적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일부 국가는 미성년자만 의무화 대상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의 헬멧 의무화를 한 국가들도 있었는데, 이들 국가에선 자전거 이용률이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독일·영국·덴마크·네덜란드 “헬멧 법적 의무 No”
서울시의 ‘국외 안전모 법적 의무화 사례’ 자료를 보면 지난 6월까지 총 16개 국가의 사례가 나옵니다.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멕시코, 스웨덴, 일본, 한국,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입니다. 대부분이 이른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입니다.
이중 독일,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멕시코 등 7개국은 법적 의무화 대상이 아닙니다. 멕시코는 법적 의무를 부과하다가 2010년 공영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강행규정을 폐지했습니다.
일부 지역이나 연령에만 헬멧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한 곳도 있습니다.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스웨덴 5개국입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주마다 규정이 다릅니다. 미국 워싱턴주는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헬멧 착용을 의무화했고,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는 각각 14세 미만, 18세 미만만 의무적으로 헬멧을 쓰게 했습니다. 캐나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모든 연령에게, 온타리오주에서 18세 미만에게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프랑스, 일본, 스웨덴은 각각 12세, 13세, 15세 미만에게만 헬멧을 의무적으로 쓰게 했습니다. 아직 자전거를 능숙히 다룰 만큼 성장하지 않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헬멧 착용을 의무화한 국가는 4개국입니다.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그리고 한국입니다. 다만 한국과 아르헨티나는 아직까지 헬멧 미착용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습니다.
반면 호주와 뉴질랜드는 벌금을 내야 합니다. 호주는 주마다 71~319 호주달러(약 5만7000원~25만5000원) 정도이고, 뉴질랜드는 55 뉴질랜드 달러(약 4만원)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공공자전거 이용률이 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호주나 뉴질랜드는 공공자전거 안전모 의무착용이 공공자전거 이용 감소 시켰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자전거 헬멧 의무화’ 시행 첫날 어땠나
이런 가운데 28일 한국에서도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가 처음으로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헬멧을 쓴 자전거 이용객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의 한 자전거 대여소에서 일하는 김경태(68)씨는 “헬멧을 쓰라고 권해도 손님들이 거의 안 쓴다”고 말했습니다.
연인과 한강공원을 찾은 홍모(25)씨는 한강공원에서 따릉이를 탔지만 헬멧을 쓰지 않은 채였습니다. 홍씨는 “다른 사람이 쓰던 걸 굳이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홍씨 같은 사람들이 많았는지, 한강공원 인근 따릉이 대여소에는 자전거는 거의 다 대여해갔지만 옆에 있는 헬멧 보관함에는 헬멧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40대 후반 김모씨는 “자기 것도 귀찮아서 안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남이 쓰던 걸 누가 쓰냐”며 “자전거도 안 타는 사람들이 이상한 법을 만들어놨다”고 말했습니다.
여론도 썩 좋진 않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3일부터 ‘따릉이 안전모 의무 착용’ 찬반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28일 오후 5시25분 현재까지 2499명이 참여했는데 반대가 2254표로 88%였고 찬성은 245표로 12%에 불과했습니다.
서울시 “자전거 헬멧 이용률 3%… 배치 일단 유보”
이런 가운데 ‘탁상 입법’ 비판을 받는 국회는 다시 안전모 착용 ‘의무’를 ‘노력’으로 바꾸는 도로교통법 재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입니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대표발의한 재개정안에는 모든 자전거 운전자에게 “안전모 등을 반드시 착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 개정 도로교통법 조항을 “안전모 등을 착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바꿨습니다. 앞서 국회는 애초에 전기자전거에만 부과기로 했던 자전거 헬멧 착용 의무화를 일반 자전거로까지 확대해 ‘탁상 입법’을 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일단 따릉이 안전모 배치를 유보하고 법 개정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제일 중요한 게 착용률인데 시범사업 결과 따릉이 이용자 3%만 헬멧을 이용하고 있다. 여기에 계속 예산을 쏟아 부을 수도 없어서 헬멧 배치를 유보했다”며 “법 개정이 잘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습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