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 두발 자유화 선언’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학생에게 파마·염색을 허용할 것인지를 두고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 전문가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27일 ‘학교 구성원 합의를 전제로 학생의 두발 길이·파마·염색을 일체 간섭하지 않는 방향으로 교칙을 개정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서울 시내 중·고교에 전달했다. 이에따라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서울에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뽀글 파마’를 한 중·고등학생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 됐다.
두발 자유화 선언 이후 교육 현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그들의 엇갈리는 반응을 들어봤다.
완전한 두발 자유화에 찬성
△인천 중학교 교사 오모(30)씨.
“완전한 두발 자유화에 대한 찬성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학교도 변해야 한다. 학교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능력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현재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창의적이고 심미적 감성 역량을 함양한 인간이다. 이러한 교육 과정을 추구하면서 학생들을 획일화시키고 개성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순이다. 덧붙여 학교에서 과도하게 두발을 단속하는 것은 교육활동을 저해한다. 교사가 두발을 단속함으로써 교육활동에 쓰여야 할 에너지가 불필요하게 소모된다. 또 학생들과의 마찰은 효율적인 수업을 방해한다.”
△인천 고등학교 교사 현모(25)씨.
“학생들이 방학때, 혹은 졸업을 앞두고 지나치게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하거나 하고 싶어하는 것은 평소 학교로부터 받은 두발 규정에 의한 압박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완전한 두발 자유화를 하고 나면 이런 반발심이나 억압감 때문에 과한 염색을 하는 학생들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각자 자신의 개성이나 외모에 어울리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다니게 될 것이다.”
△강동구 중학교 교사 박모(26)씨.
“완전한 두발 자유화를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체의 자유’라는 인권 존중에 있다. 다음으로 학생들은 본인의 머리 스타일을 자율적으로 가꿈으로써 자기관리 역량을 높일 수 있다. 두발 상태와 탈선 혹은 학업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제약할 근거도 없다. 마지막으로 두발 규제는 일제시대의 잔재로 반드시 청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경북 중학교 교사 안모(56)씨.
“개인의 개성이 존중되는 요즘 시대에 두발 규제가 있어도 어차피 단속이 잘 안 된다. 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두발 규제를 어기는 학생들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게 현장의 실체다. 차라리 규제를 없애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이라도 줄이는 게 낫다.”
염색·파마 자유화는 지나쳐
△인천 중학교 교사 송모(27)씨.
“두발 길이의 자율에는 찬성한다. 염색과 파마의 경우 학생들의 개성과 자기 표현권을 생각할 때 무조건 규제해선 안 되는 부분일 수도 있지만, 학교 측과 교사 측에도 선택권을 일정 부분 줘야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가 또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외모를 중시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않으면 정도를 지나칠 수 있다. 또한 요새 미용실 서비스 비용이 평균적으로 높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머리스타일을 통해 학생들이 예기치 못하게 빈부격차를 경험할 수도 있다.”
△서울 동작구 중학교 교사 홍모(28)씨.
“부분 자유화까지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 학생이 자신이 ‘학생’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느끼게 하기 위해 외면을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은 꽤 효율적인 방법이다.”
△서울 동대문구 고등학교 교사 박모(27)씨.
“학교마다 자율화는 이미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 너무 튀는 색으로 염색을 하거나 지나치게 화려한 파마(호일펌 등)를 하는 건 제한해야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방심리가 있어 특정 연예인을 따라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있다. 소수 학생들이 튀는 머리를 하면 다수 학생들이 따라하는 경우가 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친구들을 따라하고 이에 따라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머리스타일을 아무런 제한없이 자유롭게 풀어둔다면 다른 치장(문신, 피어싱 등)에 대한 단속도 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는 학교 풍속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 상태 유지해야(두발 길이 규정도 필요)
△중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 이모(47)씨.
“요즘도 학생들 머리 길이가 너무 길어서 보기 좋지 않다. 학생은 성인이 되기 전 사회적, 학문적으로 배우는 기간이기 때문에 몸가짐을 단정히 할 필요가 있다. 내 아들만 봐도 학교에서 머리 길이를 단속하지 않자 매일 아침마다 드라이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이런 상황에서 두발 자유화를 한다면, 자신의 적성을 찾아야하는 학생이 지나치게 외모 가꾸는 데 시간을 소비할 것이 뻔하다.”
△서울 서대문구 중학교 교사 박모(36)씨.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랜 기간 학생의 두발이나 복장을 단속한 건 그럴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은 몸가짐에서 나온다. 각종 화장, 머리스타일 등 치장 요소가 지나치게 많아진 요즘, 학생들에게 이런 것들을 모두 허용해주면 사춘기 청소년들은 외모 가꾸기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럴 위험성을 막아주는 게 어른의 임무다. 무엇이 중요한지, 옳은지 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청소년들을 강제적으로나마 관리해줄 필요가 있다.”
각 학교의 판단에 맡겨야
△서울 도봉구 중학교 교사 이모(28)씨.
“외모로 학생의 품성을 재단하는 건 편견이자 ‘학생’이라는 옛 틀에 가두는 것이기 때문에 개선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변화가 이뤄지려면 각 구성원의 공감대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학생, 학부모, 학교 차원의 공론화위원회에 판단을 맡겨야한다.”
△경북 고등학교 교사 문모(56)씨.
“서울시교육감이 학교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다고 했지만 사실상 강요나 다름 없다. 학교 공론화 과정에서 반대가 많아 두발 자유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나. ‘교육감도 두발 자유화를 결정했는데, 학교에서 반대한다’는 등의 이유로 반항할 것이 뻔하다. 결국 이번 조 교육감의 선언은 교칙은 학교의 장이 결정하라는 관련법을 어긴 것이다.”
△황영남 미래교육자유포럼 대표.
“두발 자유화는 교내 다른 교칙, 분위기 등에 따라 각 학교가 결정할 사항이다. 만약에 교복까지 자율화가 된 학교라면 두발 자유화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교복에 대한 규정이 엄격한 학교인데 두발만 자유화할 수 있겠나. 그런 경우 교복을 입은 학생의 머리가 지나치게 화려한 모순적인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교육청이 나서서 ‘두발 자유화’라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니,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들이 이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이는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처사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