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기회를 주셔서…” 15년차에 찾아온 이성열의 전성기

입력 2018-09-27 16:50 수정 2018-09-27 17:24
이성열의 타격 장면. 한화 이글스 제공

“그동안에도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 제가 정말 못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꾸준하게 성적을 낼 기회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화 이글스의 이성열(34)은 지난 26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 8회말에 우월 솔로홈런을 치며 2004년 프로 데뷔 후 14년 만에 개인 통산 첫 30홈런 고지에 올랐다. 그는 이날 홈런 이외에도 자신의 자그마한 기록 하나를 더 경신했다. 4차례 타석에 들어선 그는 2010년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달성했던 자신의 시즌 최다 타석(484타석) 기록을 넘었다. 30홈런은 시즌 486번째 타석에서 나왔다.

2016년 86경기, 지난해 81경기에 출장했던 이성열은 올해에는 121경기에 나서고 있다. 투수를 상대할 기회가 많아진 만큼 홈런, 타점(90타점), 안타(133개)가 모두 커리어하이를 가리킨다. 이성열은 27일 “올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에서 발전된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 쪽에서는 별다른 말씀을 드릴 게 없다. 경기를 루틴하게 나갈 수 있게 도와 주신 덕분”이라며 겸손해했다.

이성열은 그간 ‘홈런 아니면 삼진’의 이미지로 기억되곤 했다. 하지만 안경을 쓰고 등장한 올 시즌에는 ‘밀어칠 줄 아는 타자’가 됐다. 프로야구 통계 사이트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성열의 홈런 30개 가운데 과반인 17개가 좌측으로 향했다. 특유의 힘을 바탕으로 몸쪽 공도 밀어쳐 담장을 넘긴다. 잡아당겨 만든 우월 홈런은 오히려 적은 11개다.

어퍼스윙이 레벨스윙으로 바뀌었다는 관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성열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다만 장종훈 타격코치의 지도 내용을 언급했다. 그는 “장 코치님께서 인앤아웃 스윙을 강조하셨다. 그걸 많이 훈련했던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팔꿈치를 몸통에 붙이고 공을 최대한 끌어들여 치는 인앤아웃 스윙은 타격의 기본기로 일컬어지지만, 사실 프로들도 쉽지 않다고 여기는 스윙이다. 이성열은 “덕분에 밀어서 홈런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야구를 그만두고 소를 키울까 고민했다”는 인터뷰로 화제가 됐다. 이성열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가 그만큼 절박한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 이성열은 “대단한 기록을 남기는 선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도 있고, 내가 거기 속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열은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지만 남은 야구인생은 좋은 방향으로 가다가 끝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15년차의 전성기를 부른 동력은 가족일 지도 모른다. 이성열의 메신저 창에는 ‘나는 아빠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이 없을 때에는 혼자만 생각했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야구를 더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개인적 목표를 묻자 “없다”고 무뚝뚝하게 답한다. 이성열은 그저 팀이 이겨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이성열은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고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마다 한용덕 감독의 가슴팍을 때린다. 지난 4월 8일 KT 위즈와의 부상 복귀전에서부터 시작된 이 세리머니가 30차례가 됐다. 한 감독은 “이거다 싶었다” “내 가슴은 늘 열려 있다”는 소감을 말했었다. 승부처냐 아니냐에 따라 강도는 달랐는데, 앞으로는 아무래도 조금 세질 전망이다. 이성열은 “포스트시즌에 나가게 되면, 더욱 격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