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건아 의존도 줄였지만, ‘일심동체’ 코리아 계속 보려면

입력 2018-09-21 10:30 수정 2018-09-21 13:23
뉴시스

페인트존에 귀화선수 라건아(리카르도 라틀리프)가 상대 선수를 제압하고 자리를 잡는다. 안정적인 득점은 물론 리바운드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 포워드들은 외곽에서 화끈한 3점포를 꽂는다. 가드들은 2대2 플레이와 저돌적인 돌파, 컷인 플레이로 공격 다변화를 꾀한다. 라건아 의존증에서 탈피한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을 계속 볼 수 있을까.

대표팀은 지난해 8월 레바논에서 펼쳐진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에서 3위에 올라 화제를 모았다. 폭발적인 3점슛에 유기적인 움직임을 활용한 패스 위주 팀플레이, 속공 득점이 조화를 이루며 ‘KOR든스테이트(KOREA+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올해 1월 라건아 귀화 이후 조직력 문제, 그리고 라건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한국의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라건아가 홀로 고군분투한 가운데 코트 위 나머지 선수들의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이렇다 할 공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 상대가 지역방어 아닌 일대일로 맨투맨 수비를 들고 나올 경우 해결책이 많지 않았다. 대표팀이 값진 동메달을 따고도 팬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이유였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대표팀은 2019 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2연승을 달리며 재정비에 나섰다. 라건아는 공을 잡지 않아도 동료들에게 다가가 스크린을 서는 등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나머지 선수들은 라건아가 공을 잡았을 때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슛 기회를 찾아다녔다. 그러자 라건아가 무리하게 일대일 공격을 시도하는 모습도 줄었다. 속공 상황에서는 라건아와 토종 선수들 간의 한층 성숙해진 호흡이 돋보였다.

대표팀 주장 박찬희는 지난 17일 시리아전이 끝난 뒤 “농구월드컵 예선도 아시안게임만큼 중요한 경기다. 대표팀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지만 선수들과 휩쓸리지 말고 좋은 정신력으로 경기에 임하자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비록 시리아가 한수 아래의 전력을 보였지만 아시안게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사카 조지 시리아 대표팀 코치는 “한국은 계속 좋은 템포로 경기하고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며 “한국은 3년 전 만났을 때보다 더 조직적이고 공격적인 모습이다. 선수 전원이 전술을 잘 이해하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시리아의 귀화선수 저스틴 호킨스는 “한국은 좋은 템포를 가진 팀이고, 훌륭한 슈터들이 많다. 그들은 매번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한국은 골밑에서 많은 리바운드를 잡고 팀플레이를 통해 아름다운 농구를 펼친다”고 평가했다.

한국은 이번 대표팀 엔트리에 장신 포워드 안영준, 최진수, 정효근의 이름을 올려 높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라건아 이승현 등 빅맨이 있지만 평균 신장이 큰 팀을 만나면 고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시안게임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조직력, 높이 문제를 해결했더니 이번엔 또 다른 아쉬운 공백이 생겼다. 지난 18일 소속팀 연습경기 중 발가락 통증을 호소한 포워드 최준용이 골절 수술을 받아 4개월가량 재활에 들어갔다.

최준용은 현 대표팀 전력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200㎝의 큰 키를 앞세워 포인트가드부터 파워포워드까지 소화하는 멀티 자원이다. 기동력과 수비력이 좋고, 최근 대표팀 포인트가드로 나서 탁월한 패스 센스를 선보이며 동료들의 득점을 도왔다. 김선형 박찬희 등 기존 주축 가드들이 막혔을 때 변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체불가 자원이 최준용이기도 하다.

한국은 오는 11월 29일 레바논과의 월드컵 예선 원정 경기를 갖는다. 12월 2일에는 요르단을 홈으로 불러 경기를 치른다.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최준용의 결장은 유력해 보인다. 라건아 의존도를 줄였지만 대체 자원을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남자 대표팀은 허재 전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사령탑 자리에 새 인물을 찾아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일심동체’ 코리아를 계속해서 보려면 대한민국농구협회의 발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