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0일 서울무역전시장 컨벤션홀1에서 ‘한국축구 정책 제안 간담회’를 열고 국민들의 의견을 직접 수렴했다. 팬들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의견을 내고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자리를 협회가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각계각층의 축구팬들은 날선 비판은 물론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한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판곤 협회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장과 홍명보 협회 전무이사 등 협회 및 축구계 관계자, 팬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남녀 대표팀과 유·청소년 대표팀 강화, 대표팀 철학 제시, 감독 선임 및 대표팀 구성, 기타의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남자 대표팀 강화 방안에 대해 멘털 코치 운용, 전력 분석 강화, 감독 임기 보장, 국내 지도자 양성 등의 의견이 나왔다. 멘털 코치 운용 관련 코치-선수 간의 깊은 관계 형성이 필요하고, 지속적인 추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축구팬은 “프로팀은 선수들이 모여 있어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한데 대표팀은 소집 기간에만 모인다. 연장성 있는 멘털 교육이 어렵다”고 목소리를 냈다.
전력 분석 강화를 주장한 팬은 “유럽에서 전력분석은 지원이 아닌 코칭스태프로 분류한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팬은 “전력 분석 관련 더 많은 교육이 필요하고, 여러 명의 전력분석 인원을 팀 단위로 운영해야 깊이를 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간 한국 축구에서 외국인 감독의 임기가 짧았던 점도 문제로 거론됐다. 협회는 물론 팬들도 한두 번의 경기를 보고 감독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지도자 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의견을 낸 팬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지도자들이 많다. 국내 지도자를 해외로 보내 교육도 하고, 박항서 베트남 감독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며 “우리도 세계적인 지도자를 길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소년·청소년 대표팀을 강화하려면 성과, 성적 위주 축구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유소년 대회에서 성적을 따지더라. 유소년 대회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유망주를 찾는 대회다” “유소년 대회를 많이 열어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컵대회보다는 친선경기를 늘려 성적지상주의를 피하고 아이들이 기본기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등의 제안이 있었다. 이밖에 8인제 축구를 활성화해야 한다거나 인성 교육을 할 수 있는 유소년 지도자 육성에 힘쓰자는 제안도 있었다.
대표팀의 철학 문제도 언급됐다. 한 팬은 “무조건 국가대표 선수들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사라져야 한다. 협회가 선수들의 심리적 압박감을 잘 관리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은 “선수와 지도자, 팬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철학이나 방향을 슬로건으로 만들어 구분해달라”고 요구했다.
감독 선임 및 대표팀 구성에 대해선 유능한 지도자의 장점을 보고 배우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위해 국내외 지도자들이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가 많아져야 하며, 좋은 성적을 냈을 때 사령탑의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여자 축구 대표팀을 활성화하려면 A매치와 경기 중계, 지원 등을 늘리고, 팬들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흘러나왔다. 한 여자 축구 팬은 “여자 대표팀도 1년에 2번 정도 A매치를 열어주고, 미디어는 경기 중계를 늘리고, 여자 축구 현장을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남성 팬은 이번 간담회를 개최한 협회의 시도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여태껏 질문에 대답이 없던 협회가 국민과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축구 혁신의 계기가 될 것 같다”며 “오늘 행사는 시도한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 같다.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면 한국 축구가 함께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저희가 귀를 열고 들었다. 지적해주신 부분을 충분히 고려, 검토하겠다”며 “감독 선임 등 지나간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부족했던 점을 확인해보겠다. 더 연구하고 분석해서 하나씩 개선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홍 전무이사는 “이번 간담회는 보여주기식이 아니었다. 팬들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전체적으로 참고하겠다”며 “팬들의 의견, 제안을 모아서 내년부터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