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을 위한 기각사유” 유해용 구속영장 기각에 반발한 검찰

입력 2018-09-21 05:54

법원이 사법농단 1호로 꼽힌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 검찰이 “기각을 위한 기각사유”라며 크게 반발했다. 검찰은 “재판의 본질로 압수수색조차 할 수 없는 기밀 자료라던 법원이 같은 자료를 비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모순된 행태”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잠 부장판사는 20일 오전 10시30분부터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열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허 판사는 기각 사유에 대해 “검찰의 영장청구서 기재 피의사실 중 변호사법 위반을 제외한 나머지는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문건 등 삭제 경위에 관한 피의자 등의 진술을 종합할 때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허 판사는 또 “피의자가 작성을 지시하고 편집한 문건에는 구체적인 검토 보고 내용과 같이 비밀유지가 필요한 사항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공공기록물은 국가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인정된 기록물의 원본을 의미한다. 보고서 파일들이 전자기록물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이를 두고 원본을 유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허 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피의자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연계됐다는 부분에 관한 소명이 부족한 점에 비춰볼 때 피의자가 문건 작성을 지시한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거나 지시에 부당한 목적이 개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기각 사유에 대해 “어떻게든 구속사유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기각을 위한 기각사유’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검찰은 “그동안 영장판사는 재판 관련 자료에 대해 ‘재판의 본질’이므로 압수수색조차 할 수 없는 기밀 자료라고 하면서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해 왔는데 오늘 똑같은 재판 관련 자료를 두고 비밀이 아니니 빼내도 죄가 안 된다고 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피의자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담한 방식으로 공개적으로 증거인멸을 하고 일말의 반성조차 없었던 그간의 경과를 전국민이 지켜봤다”며 “피의자에 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다’고 명시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사법농단 사건에 있어서는 이런 공개적, 고의적 증거인멸 행위를 해도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대단히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앞서 검찰은 18일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절도 및 공공기록물관리법, 개인정보보호법,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유 전 연구관은 2014년 2월~2017년 1월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취득한 수 만 건의 기밀문건 파일을 지난 2월 퇴직하며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 근무 당시 관여한 소송을 퇴직한 후인 지난 6월 수임한 정황도 파악했다. 검찰은 이번 달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세 차례에 걸쳐 청구했지만 법원은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그 사이 유 전 연구관은 대법원 문건을 파기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훼손했다. 한편 유 전 연구관은 영장심사가 끝난 후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다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귀가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