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사법농단 1호’ 구속영장 또한 기각했다. 재판 기록 문건 등 자료를 무단으로 빼내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혐의를 받고 있는 유해용(52·사법연수원 19기)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구속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유 전 연구관에 대해 청구된 공무상비밀누설 및 직권남용 등 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2780자가 넘는 장문의 사유를 댔다.
허 부장판사는 검찰이 유 전 연구관에게 적용한 혐의를 하나씩 쪼개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지적했다.
허 부장판사는 “유 전 연구관에게 적용된 피의사실 중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등 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존재한다”며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를 했다고도 평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건 등 삭제 경위에 관한 피의자와 참여자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할 수 없다”며 “구속의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 전 연구관은 2014년 2월∼2017년 1월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취득한 수만건의 기밀문건 파일을 지난 2월 퇴직하며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이었던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 측의 특허 소송 상고심 등에 대한 정보보고서를 소속 연구관에게 작성토록 지시한 뒤 이를 청와대에 보고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 근무 당시 관여한 소송을 퇴직한 뒤인 지난 6월 11일 수임한 정황도 추가로 확인했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재직 당시 직무상 취급했던 사건의 수임을 제한하고 있다.
최근 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90%를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유 전 연구관은 자신이 반출한 대법원 문건 파일 수만 건을 파기해 증거인멸 방조 논란도 있었다.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법원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다. 검찰이 청구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법원을 향해 역풍이 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그간 영장판사는 재판 관련 자료에 대해 '재판의 본질'이므로 압수수색조차 할 수 없는 기밀 자료라고 하며 영장을 기각해 왔다”며 “똑같은 재판 관련 자료를 두고 비밀이 아니니 빼내도 죄가 안 된다고 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뉴시스에 말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