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퍼스트레이디,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가 재평가 되고 있다. 리 여사는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와 처음으로 평양과 백두산에서 카운터파트로 함께 2박3일 일정을 소화했다. 일정 내내 김 여사를 에스코트하며 재치 있는 표현과 겸손한 자세로 정상회담을 풍성하게 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인민의 어머니’ 이미지를 어필했다”고 평했다.
◇솔직하고 재치있는 언변
문 대통령 방북 첫날인 18일 남북 정상이 회담을 하는 동안 남북 퍼스트레이디는 옥류아동병원과 김원균명칭 종합대학을 찾았다. 리 여사는 이날 오후 2시30분쯤 평양 대동강 문수구역에 있는 옥류아동병원을 찾았다. 김 여사는 리 여사보다 30분 늦은 3시쯤 병원에 도착했다.
리 여사는 김 여사를 맞이하며 “우리나라가 좀 보건의료 부분이 많이 뒤떨어져 있다”며 “그래서 국가적으로 이 부분을 좀 치켜세울 수 있는 그런 조치들이 많이 펼쳐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옥류아동병원도 그렇게 지어졌다”며 “우리 병원에 온 기회에 한 번 봐주십시오”라고 예의를 갖췄다.
남편 김 위원장과 닮은 ‘솔직 화법’이었다. 북한 현실을 사실 그대로 전하며 겸손하게 표현했다. 이 말을 들은 김 여사는 살짝 놀라는 듯 했지만 머쓱해 하는 리 여사에게 “어휴 무슨 말씀을요”라며 웃으며 화답했다.
이날 김원균명칭 종합대학과 이틑날 옥류관에서 조심스럽게 김 여사의 말에 맞장구 치던 리 여사는 정상회담 마지막날 백두산 천지에서는 재치 넘치는 언변으로 주위를 사로잡았다.
리 여사는 “백두산에 전설이 많다. 하늘의 선녀가, 아흔아홉 명의 선녀가 물이 너무 맑아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는데, 오늘은 또 두 분께서 오셔서 또 다른 전설이 생겼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서울 답방 시 한라산 등반 얘기가 나오자 “우리나라 옛말에 백두에서 해맞이를 하고, 한라에서 통일을 맞이한다는 말이 있다”며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한마디로 설명했다.
◇최대한 낮춘 겸손과 은근한 배려
리 여사는 남북정상회담 일정 내내 김 여사를 수행원처럼 에스코트했다. 평소 밝은 색상의 옷을 즐겨입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회담 일정 내내 드러나는 옷차림은 최대한 피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리 여사는 지난 18일 오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평양 국제공항에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마중하러 나왔을 때부터 같은 날 만찬 자리까지 짙은 감색 투피스 차림을 유지했다. 김정숙 여사가 상황에 맞게 두 종류의 양장과 한복을 선보인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회담 이튿날인 19일에도 리 여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는 흰색 스트라이프 무늬가 들어간 남색 투피스를 입었다. 손톱에는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았으며, 목걸이는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20일 백두산에서도 단색 계통 옷을 입었다.
드러나지 않는 배려도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 내외와 산책이나 함께 일정을 소화할 때 길을 양보하거나 손으로 안내했다. 이러한 장면은 평양공동취재단 영상과 사진에 고스란히 담겼다.
리 여사의 배려는 백두산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상징하는 장면이 됐다. 장군봉을 거쳐 천지까지 향하기 위해 남북 정상 내외는 향도역 4인용 케이블카에 함께 탑승했다. 이 과정에서 리 여사는 남북 정상을 옆에서 안내했다.
결정적 장면은 천지에서 나왔다. 김 여사가 천지에 도착해 계획대로 물을 뜨던 순간이다. 김 여사는 맑은 천지에 발을 담그고 몸을 낮춰 물을 담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이 모습을 보던 리 여사는 김 여사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고는 김 여사의 외투 왼쪽 옷깃을 살며시 잡아 올렸다.
상체를 앞으로 숙여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을 뜨던 김 여사의 옷이 물에 젖을까 염려한 리 여사의 배려였다. 리 여사는 그 자세 그대로 김 여사가 합수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어 페트병에 물이 다 채워질 때까지 김 여사의 옷깃을 잡고 있었다.
정지용 기자 jyje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