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사법농단 1호’ 구속영장도 기각? 영장판사 “범죄 중대성 근거 있느냐”

입력 2018-09-20 18:58 수정 2018-09-20 19:18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09.20.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심사하면서 “범죄의 중대성을 어떤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냐”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법원이 ‘사법농단 1호’ 구속영장 또한 기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대법원 기밀 문건 수만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며 “변호사법 위반 혐의의 중대성을 무슨 근거로 이야기 하는 것이냐. 유 전 연구관이 수임을 해서 재판 결과를 바꿔놨느냐”는 지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중대하다고 주장을 했으면 왜 중대한지 말을 해야할 것 아니냐”고 다그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 부장판사는 공공기록물 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대법원 문건을 공공기록물로 볼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했다고 한다. 유 전 연구관의 변호인인 신모 변호사는 통화에서 “허 부장판사가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임한 재판 판결 결과와 관련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증명할 확실한 자료가 있느냐’는 말도 했었다”고 전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8일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절도 및 공공기록물관리법, 개인정보보호법,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이 관련 수사를 시작한지 석 달 만에 처음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이다.

유 전 연구관은 2014년 2월∼2017년 1월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일하면서 취득한 수만건의 기밀문건 파일을 지난 2월 퇴직하며 반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이었던 김영재 성형외과 원장 측의 특허 소송 상고심 등에 대한 정보보고서를 소속 연구관에게 작성토록 지시한 뒤 이를 청와대에 보고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 근무 당시 관여한 소송을 퇴직한 뒤인 지난 6월 11일 수임한 정황도 추가로 확인했다. 변호사법은 공무원 재직 당시 직무상 취급했던 사건의 수임을 제한하고 있다.

유 전 연구관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의 부당함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한다. 신 변호사가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유 전 연구관 측은 김영재 원장 측 특허 소송 정보를 작성하는 데 개입한 혐의에 대해 “(유 전 연구관이) 사법행정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고 인식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시 유 전 연구관은 특허 소송이 ‘박근혜 청와대 관심 사건’인줄은 꿈에도 생각하기 어려워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유 전 연구관 측은 반출한 기밀 문건에 대한 절도 혐의에 대해서도 “공무원이라도 업무를 처리하는 중간과정에 생산돼 나중에 버려도 될 초안 등을 차곡차곡 쌓아서 관리했다면 자신의 소유권이 인정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출 문건이 유 전 연구관 소유라고 언급한 셈이다.

법원 안팎에서는 허 부장판사의 태도 및 그간 보여준 영장전담 판사의 판단을 근거로 이번 구속영장도 기각될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실상 기각을 염두에 두고 영장 심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법원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 90%를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유 전 연구관은 자신이 반출한 대법원 문건 파일 수만 건을 파기해 증거인멸 방조 논란도 있었다.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법원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 상황이다. 검찰이 청구한 첫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법원을 향해 역풍이 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이같은 관측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사법농단 수사는 ‘윗선’으로 나아갈 활로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특수 1·2·3·4부를 관련 수사에 투입해 총력전에 나선 상태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