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남측 수행단의 백두산 등반은 갑작스러운 일정으로 전해졌다. 18일부터 20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평양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제안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급작스럽게 성사됐다. 평양에서 서울로 전해진 2가지 장면으로 미뤄봐도 이런 상황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다. 백두산 등반 소식은 19일 오후 4시가 다 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는데, 정부는 이로부터 한 시간 뒤인 오후 5시쯤부터 방한 점퍼를 긴급하게 구했다.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 대부분이 등반에 적당하지 않은 정장 구두를 신은 것도 이를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일 오전 백두산에 오른 남측 수행단은 K2 바람막이와 구스 다운(거위털) 점퍼를 입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등이 천지를 배경으로 엄지를 치켜들고 찍은 단체 사진을 보면, 모두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K2 바람막이를 맞춰 입었다. 이재용 부회장만 검은색 구스 다운을 걸쳤다. 이 역시 K2 제품이다.
K2 관계자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전날 오후 5시쯤 통일부로부터 백두산 등반 때 입을 방안, 방수 제품이 필요한데 급하게 살 수 있냐는 요청을 받았다”고 전했다. 통일부의 구매 제안에 맞춘 제품을 확인하고, 재고 파악을 해 거래가 성사됐다.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에 K2 방한 제품이 도착한 시간은 오후 10시쯤이다. 다음날 오전 일정에 사용될 물품이 전날 저녁에 가까스로 준비됐다. K2는 경량 다운 재킷과 바람막이 점퍼를 각각 250벌씩, 모두 500벌을 준비해 전달했다.
2가지 제품은 각각 20만원대 초반으로 가을과 초겨울 입는 겉옷이다. 백두산 천지의 이날 날씨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백두산 천지의 체감 온도는 0도 안팎이었다. 다운 재킷과 바람막이를 둘 다 겹쳐 입은 모습도 포착됐다.
다소 노령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이날 새벽 평양 국제공항에서 직접 방한 물품을 챙기는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담기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김정숙 여사와 김정은 위원장·리설주 여사는 장군봉에 도착해 천지 전경을 감상하고, 천지까지 내려가 직접 물을 만졌다. 두 정상 내외는 모두 겨울 코트를 입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 등과 대부분의 남측 수행원은 등산화가 아닌 정장 구두를 신었다. 강경화외교부 장관은 굽 너비가 제법 넓지만 그래도 꽤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장군봉에 올랐다.
백두산 천지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은 “한창 백두산 붐이 있어서 우리 사람들이 중국 쪽으로 백두산을 많이 갔다. 지금도 많이 가고 있지만, 그때 나는 중국으로 가지 않겠다, 반드시 나는 우리 땅으로 해서 오르겠다 그렇게 다짐했다”면서 “그런 세월이 금방 올 것 같더니 멀어졌다. 그래서 영 못 오르나 했었는데 소원이 이뤄졌다”고 감격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남측 인원들, 해외동포들 와서 백두산을 봐야 한다. 분단 이후에는 남쪽에서는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리움의 산이 됐으니까”라고 화답했다.
김정숙 여사는 제주도가 수원지인 한 제품의 500㎖짜리 생수병을 가지고 천지에 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정숙 여사가 제주도 물을 채운 생수병을 가져왔고, 천지로 내려간 뒤 일부를 뿌리고 천지물을 다시 담아 합칠 생각이라고 전했다.
김정숙 여사는 “우리나라 옛말에 백두에서 해맞이를 하고, 한라에서 통일을 맞이한다는 말이 있다”는 리설주 여사의 말에 “한라산 물 갖고 왔다. 천지에 가서 반은 붓고 반은 백두산 물을 담아갈 거다”라고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