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영원한 좌완 에이스’ 봉중근의 발자취

입력 2018-09-20 15:36
봉중근=뉴시스

‘야생마’ 이상훈 이후 LG 트윈스 최고의 좌완 투수로 군림했던 선수가 떠난다.

봉중근은 신일고 시절부터 초대형 유망주로 이름을 드날렸다. 미국프로야구(MLB)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눈에 들어 미국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MLB 데뷔는 갑작스러웠다. 봉중근은 2002년 4월 랜디 존슨과 함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강력한 원투펀치를 구성했던 커트 실링과 깜짝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등록명은 ‘JUNG BONG'이었다.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6이닝 동안 8안타를 맞으며 5실점했다. 1회 2사 만루 상황에서 치퍼 존스의 미숙한 수비로 3점을 내주는 등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한 탓도 있었다. 경기 직후 봉중근은 마이너리그로 바로 내려갔다.

봉중근이 MLB에서 가장 빛났던 해는 한 시즌 뒤인 2003년이다. 개막전 명단에 포함된 봉중근은 중간계투 역할을 맡아 시즌 두 번째 경기부터 10경기에서 단 1점도 실점하지 않는 등 5연승을 포함해 6승을 올렸다.

아쉽게도 그의 활약은 길지 않았다. 시즌 중반부터 구위가 떨어지는 모습을 노출하며 평균자책점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결국 봉중근은 5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친 뒤 신시네티 레즈로 트레이드된다. 신시네티에서 꿈에 그리던 선발승을 올리기도 했지만 팔꿈치 부상을 당해 긴 공백기를 가지게 된다.

2006년 오랜만에 한국 팬들 앞에 모습을 선보인다. 한국야구가 미국을 꺾는 등 4강 신화를 작성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발탁됐다. 구위가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것 같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2⅔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다.

효심이 지극했던 봉중근은 2006년 투병중이던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MLB 생활을 접고 KBO행을 선언했다. LG가 1차 지명권을 사용해 그를 영입했다. 계약금은 무려 10억, 연봉은 3억5000만원에 달했다. 신인 신분이었지만 FA급 대우를 받은 셈이다.

지금은 LG의 2000년대 최고의 지명으로 꼽히지만(박용택의 지명은 1998년이다), 당시만 해도 봉중근 지명은 리스크가 컸다. 봉중근에게 준 10억원은 지금까지 한기주(당시 KIA 타이거즈)와 함께 신인 역대 최고 계약금 기록이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해외파 선수들이 딱히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한 상황이었다. 송승준이나 채태인 등 걸출한 활약을 한 해외파는 모두 2007년에 데뷔했다. 또한 유망주가 많은 서울의 어린 선수를 지명하는 권리를 포기하고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은 선수를 데려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같은 연고지를 쓰는 두산 베어스는 현재 KBO 최고의 토종 선발 중 하나가 된 이용찬과 2007년 신인왕 임태훈을 지명했다.

2007년만 해도 LG의 거액 투자는 실패로 보였다. 5점대 평균자책점에 6승 7패라는 평범한 기록을 냈다. 직구 구속도 그리 올라오지 않았고 주무기인 체인지업도 날카롭지 않았다. 안경현(당시 두산)과의 벤치클리어링만이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연봉도 1억이나 깎였다.

그렇게 2008 시즌이 개막한다. 완전히 다른 투수가 마운드에 서 있었다. 직구 구속은 150㎞ 전후까지 올랐고 그 빠른 공이 오른손 타자의 안쪽을 파고 들었다. 2007년만 해도 ‘주무기’라고 보기 어려웠던 체인지업은 엄청난 궤적을 그리며 스트라이크존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팀은 2년만에 꼴찌로 돌아갔지만 LG는 토종 에이스를 얻었다. 시즌 뒤 2009년 WBC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봉의사’라는 멋진 별명도 생긴다. WBC 후유증도 없다는 듯 이후로도 활약을 이어갔다.

하지만 부상이 그를 덮친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통증을 느낀 뒤 2011년 6월 팔꿈치인대접합수술을 받았다. 흔히 토미존서저리라고 불리는 이 수술은 일반적으로 1년에서 1년 반 정도의 재활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봉중근은 2012년 곧바로 돌아왔다. 단순히 돌아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레다메스 리즈가 극도의 부진을 보인 마무리 자리를 꿰차 전성기 시절의 공을 던졌다. 그해 그의 성적은 평균자책점 1.18에 26세이브. 단숨에 오승환의 뒤를 잇는 최고의 마무리로 올라섰다.

봉중근이 LG에서 쌓은 세이브 숫자는 109다. 선발로서도 마무리로서도 그는 LG의 영웅 이상훈에 버금가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셈이다. 그리고 19일, 봉중근은 12년간의 KBO 생활을 뒤로하고 은퇴 의사를 밝혔다.

봉중근은 팀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넘쳤던 선수다. 2012년 6월 22일 중요한 경기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소화전을 때린 뒤 손등뼈가 골절됐다. 시즌 첫 블론세이브였다. 그럼에도 결코 넘겨주지 말아야하는 경기를 내줬다는 마음이 그를 무겁게 했다. 그 부상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의 성적은 훌륭했지만, 봉중근은 시즌 뒤 “고참으로서 하면 안되는 행동이었다”며 연봉 협상을 백지위임했다.

봉중근은 은퇴의사를 밝히며 “사랑하는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LG팬들에게 봉중근은 최고의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