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9일밤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 15만명 앞에서 대중 연설을 한 것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선 사상 처음 진행된 7분 가량의 대중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평양 시민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 시민들에게 문 대통령을 소개하면서 “오늘의 이 순간은 역사에 훌륭한 화폭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민족’ ‘평화’ ‘새로운 미래’ 강조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민족’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총 10차례 등장한다. 문 대통령은 평양 시민들에게 지난 4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첫 정상회담 당시를 설명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평양 시민들에게 민족 화해와 통일, 평화의 메시지도 거듭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 우리 민족은 강인하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며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 ‘평화’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을 시작하면서 “남쪽 대통령으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평양 시민 여러분에게 인사하게 되니 그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70년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고 말했다.
◇기립박수와 환호로 화답한 평양 시민
문 대통령의 ‘능라도 대중연설’ 전반부는 평양 시민들에게 그간의 정상회담 성과를 압축해 설명하는 형식이었다. 문 대통령은 우선 ‘판문점 선언’의 주요 내용을 언급하며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19일 두 정상이 서명한 ‘평양 공동선언’의 골자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 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고 밝혀 ‘핵 없는 한반도’를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로 언급했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핵·경제 병진 건설 노선’ 종료를 공식 선언하고 경제 건설 총력 노선으로의 전환을 천명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보인다. 북한의 핵정책이 대전환기를 맞이한 시점에 남측 대통령이 직접 나서 평양 시민들에게 일종의 배경 설명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일각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의구심을 줄이고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나와 함께 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아낌없는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고도 했다.
연설 후반부에는 북한 주민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평화와 민족화해가 번영의 기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봤다”며 “김정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갈망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 시작부터 끝까지 경기장을 가득 메운 평양 시민들은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약 7분간의 연설 동안 12차례의 박수를 받았다. 특히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열렸다”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70년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끝날 때는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평양공동취재단,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