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겸손 화법’이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어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열악한 도로 사정을 언급한 지난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도 “발전된 나라에 비하면 우리 시설이 못하다”고 겸손 화법을 선보였다.
남북 정상 내외는 18일 오전 11시30분쯤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짧은 담소를 나눴다. 앞서 김 위원장과 이설주 여사가 순안 국제공항에서 문 대통령 부부를 영접한 뒤 이곳까지 동행했다. 문 대통령 내외는 2박3일간 영빈관에 묵는다. 김 위원장은 숙소 내부를 직접 안내했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은 세상 많은 나라를 돌아보시는데 발전된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 숙소라는 게 초라하다”며 “수준이 낮을 수는 있어도 최대한 성의를 보여 준비한 숙소와 일정이다. 마음을 받아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최고의 환영과 영접을 받았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을 낮추는 듯한 말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1차 회담 때 김 위원장은 “평창동계올림픽에 다녀온 수행원들이 남측 고속열차가 좋다더라. 그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고 말했다. 북측 교통 사정을 “불비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문 대통령을 평양에 초대하며 “아시다시피 우리는 도로 사정이 안 좋으니 비행기로 오시면 잘 마중하겠다”고 북한의 낙후한 도로 상황을 재차 인정했다. 당시 김 위원장의 화법을 두고 “솔직하다” “겸손하다” “파격적이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솔직한 성격을 보여주는 화법’인 동시에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드러냄으로써 남측의 도움을 청하는 의도’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한법정신의학회 이사를 지낸 조성남 강남을지병원장은 “결국 반대급부를 얻으려는 것”이라며 “경제적 고충을 드러내 더 신속한 도움을 얻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솔직한 성격인 것도 있다”면서 “자격지심으로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외교적인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며 “경제적 도움이 필요하니까 하는 얘기”라고 해석했다.
반면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득을 얻기 위해 어필하는 것이기보다는 (김 위원장의) 솔직한 면모”라고 했다. 임 교수는 “자신의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후에 도움을 얻게 되면 받겠다는 느낌”이라며 “지도자로서 나쁜 모습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복할 의지가 있기 때문에 약점에 대해서도 진솔히 얘기할 수 있는 거다. 단순히 자격지심이었다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숨기려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45분부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남북 정상이 노동당 본부 청사에서 회담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담에는 남측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배석했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김여정 노동장 중앙위 제1부부장이 자리했다. 회담은 2시간 후인 오후 5시45분쯤 종료됐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판문점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