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패륜범죄가 일어나는 TV 현장은 추악한 인간의 잔혹함으로 놀라고 잔인성에 분노하게 된다. 범죄 통계는 2012년 이후 매년 50~60건 가량 발생하고 있다.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에 따르면 2006~2013년까지 발생한 381건의 존속살해 사건 중 가정불화가 49.4%, 정신분열(질환)로 34.1%를 차지할 정도다. 땅 1만 평 매도 문제를 두고 아들은 아버지와 지속적인 다툼으로 팔순 부친과 노모를 둔기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때려 숨지게 한 뒤 도주한 사건은 국민 분노로 이글거렸다. 정신분열, 부양의 어려움, 경제적 고통, 가정불화, 재산문제로 인한 범죄는 유교전통이 강한 대한민국 길목에서 일어나는 연극 같은 현실이다.
등단 반세기 동안 공연 희곡 40여 편을 써온 작가 김영무는 이번 제3회 ‘늘푸른연극제’(8.24~9.2·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장씨 가옥의 비극사(史)를 투영한다. 연극 ‘장씨일가’(송훈상연출)는 극중 인물 장자(長子) 장춘재(양재성 분)과 아버지 장주호(정욱 분)의 갈등의 균열을 통해 가족은 붕괴되고 장남은 환각과 정신분열로 아버지 폐부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며 돌진한다. 쓰러져가는 ‘장씨일가’ 가옥에서 튕겨져 나오는 가족의 붕괴와 분열, 전통과 현대를 잇지 못하는 소통의 부재는 한국사회 기둥을 받치고 있는 가부장적 권위와 가족을 해체시킨다. 연극은 3대가 한 지붕에 살아가는 대가족의 균열을 흑백리얼리즘으로 투영하며 장씨 가옥을 소환한다.
◇요령소리로 붕괴되어 가는 ‘장씨일가’ 가옥(家屋)
‘장씨일가’(송훈상 연출)의 비극은 대(代)를 잇는 전통적인 유교환경과 권위적인 집안에서 충돌된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은 과거부터 거세당한 채 대항하거나 거부할 수 없었던 60대 대학교수 극중 인물 장춘재의 근친살인을 다루고 있는 작품은 장자의 상실과 고뇌로 정신은 분열되고 사랑의 온기는 뭉개져 비극의 비계 덩어리로 혈전된다. 응고된 피는 분노로 점화되어 아버지를 향한 복수로 치닫게 된다. 명문대학 교수로 아버지 뜻과 다르게 인생항로를 정할 수밖에 없었던 아들은 “못난 자식, 부족한 자식” 이라며 죄의식에 시달리고 삶의 좌표를 잃은 상실감은 마약까지 손을 대며 인생의 분열로 이어진다.
김영무 작가는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어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대고 있는 장주호(정욱 분) 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요령(搖鈴)을 손에 쥐어준다.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도구를 설정함으로써 업(業)과 인과응보를 밀어 넣고 중풍으로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반신불구 인물로 구부려 놓는다. 흔들거리는 요령소리는 장씨 가옥의 붕괴와 균열을 이루고 거실을 떠도는 소리의 증폭은 해체되어가는 장씨 가족의 비극적 시간으로 갈라진다. 60대의 아들(장춘재)는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열등의식으로 살아왔다. 이 여사(박승대 분)도 때로는 폭군으로 돌변하고, 한 평생 첩을 안고 살아온 남편이 흔들어대는 ‘딸랑딸랑’ 소리에 숨죽이며, 불심을 키우며 살아왔다.
이 가옥의 틈으로 울려대는 요령소리는 가옥의 온기를 모을 수 없는 공허한 신호음이다. 소통부재는 분열의 신호음을 내며 가족의 단절과 대를 잇는 가옥의 붕괴로 이어지게 만든다. 장춘재 두 딸은 술집으로 전전하고, 이여사의 ‘불심’과 맏며느리의 ‘찬송가’가 부딪치며 살아가는 장씨일가 가옥풍경은 막장을 달리고 장춘재의 정신분열은 클로스터 왕을 죽이는 햄릿의 극중 장면과 겹치면서 붕괴된 장씨일가 가옥을 핏물의 복수극으로 물들게 한다.
작가는 장씨일가 가옥에 불교·기독교·유교사상을 밀어 넣고 쓰러져 가는 가옥을 구원할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권위적인 가부장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는 억눌린 장자의 내면은 환각과 정신분열행동으로 아버지를 향해 칼날을 휘두르며 장 씨 집안을 붕괴시키는 인물이 된다. 장춘재는 집안 제사를 모셔야 하는 장자다. 4대독자 장남 장수남(김늘메 분)의 대사처럼 “할머니는 밤낮 관세음보살을, 어머닌 매일 할렐루야” 를 외치며 살아간다.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의지하며 맏며느리한테 밥상 한 번 온기 있게 받을 수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 대체 집구석 꼴이 이게 뭐냐? 내 목이 타들어 가는데... 물 한잔 갖다 줄 년이 없고,,, 그것도 하루 이틀이면 또 몰라” 라고 하는가 하면 아들(장춘재)를 향해서 “부자유친이 아니라 부자 무친” 이라며 한탄한다. 여전이 요령을 흔들며 가족을 호출하는 고령의 삶은 추락해 있고 대를 이어 가옥을 지탱하던 권위는 녹슬어 있다. 그의 소리는 현대사회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는 정적소리다.
작품에서 장자의 내면상태는 과거부터(어린시절) 전이된 치유될 수 없는 정신분열 상태로 자라나게 된다. 복수의 대상을 거세 했을 때 내면의 공포는 사라지고, 항로를 알 수 없는 난파선 인생을 탈환 할 수 있다는 환각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환각의 종점은 제거해야 하는 보상의 복수다. 작가는 장춘재의 분열이 과거부터 점화되어온 상태라는 점을 들어내기 위해 연극 햄릿의 한 장면에 멈춰져 있는 인물로 설정한다. 꼬장꼬장한 아버지는 맡은 배역(햄릿)처럼, 복수를 해야 하는 ‘클로디어스 왕’ 이다. 클로디어스는 아버지가 아니라 선왕을 죽이고 어머니를 빼앗아간 인물이다. 햄릿은 선왕죽음에 복수를 한다. 선왕의 복수를 향한 햄릿 구조와는 다르다. 장춘재의 복수의 대상은 아버지(장주호)다. 그의 자아는 아버지가 부재한 상태로 성장한 것이다. 아버지는 이미 죽어 있는 자, 무형(無形)의 인간이다.
어머니의 정부 클로디어스를 칼로 찔러버린 장면을 떠올리며 왕의 얼굴은 복수대상인 아버지(장춘재)로 보이는 정신분열을 보이며 패륜아가 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장춘재의 햄릿은 극중 인물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로 동일시되고 마약을 통한 환각은 햄릿의 망령상태가 되어 복수의 칼을 휘두르게 된다. 분열은 복수의 신호를 보냄으로써 환각상태로 아버지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아, 나는 죽는다. 호레이쇼. 맹독이 내 전신을 마비시켜 버렸네”라고 복수극의 마지막 말을 한다. 맹독은 살인의 전류가 흐르고 있는 환각의 독성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고 장자로 순응하며 살아온 장춘재에게 아버지는 거세되어 있다. 아버지는 햄릿의 선왕처럼 죽어 있는 자이며, 장씨일가의 대의 핏줄을 이어주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머니 삶마저 권위로 쟁취하고 가족을 분열시킨 인간으로 클로디아스 왕처럼 복수의 대상이자 원수이며 부재(不在)한 무형의 존재다.
◇장자의 분열과 흑백 리얼리즘
무대에 들어선 ‘장씨일가’ 2층 주택가옥은 불완전하다. 일반주택의 가옥처럼 장씨일가 풍경에 온기의 전원은 꺼져 있다. 무대 정면으로는 2층으로 된 본채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2칸 방으로 분할된 별채가 보인다. 일가 가옥은 각기 방이 독립 된 형태 구조로 배열되어 한 가족으로 온전하지 않는 일가(一家)의 분열을 무대로 배치해 비극의 가족사(史)를 투영한다. 드라마 세트장을 세워 놓은 것처럼 무대 가옥은 열려있다. 가옥 앞면을 뜯어내 장씨일가 삶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면의 배경(마루, 2층 서재, 마당, 2칸의 방) 을 평면으로 나열한 것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극중 인물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인 2층 서재, 마루, 마당, 그리고 장남(장수남)과 부인(한 여사)이 쓰는 2개 작은방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카메라가 주요공간을 투사하며 극적갈등이 일어나는 마루와 장춘재의 심리적 내면을 쏟아내고 있는 2층 서재를 촬영하고 이어서 마당과 각 장면들을 촬영하는 식이다. NG와 편집 없이 장면의 전체 컷을 담아내는 연극적 효과를 내고 있다. 입체감 있는 장면 전환의 전개 보다는 풀 샷으로 가옥과 비극을 들여다보는 무대배치와 장면 전환은 흑백 리얼리즘처럼 스쳐간다. 아버지 폐부를 찌르는 폐륜의 근친살인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연출(송훈상)은 70년대 후반 흑백 드라마처럼 느린 속도로 걸으며, 장씨일가 가족사를 수채화로 담아낸다.
‘가옥’은 온기가 없다. 장 씨 가옥은 불완전 하며 균열로 갈라져 비극의 최후를 향해 달린다. 장자의 정신분열은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한 채 살아온 고뇌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비극으로 파멸되는 장씨일가 가족사에 종교의 구원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전통적인 유교환경 에서 아버지 권위는 중풍으로 반신불구가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업은 현대사회로 일어설 수 없는 불구의 신세다.
장씨일가 3대를 잇는 4대독자 장수남(김늘메 분)은 직업도 없이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를 꿈꾸는 자유로운 인물이다. 통기타를 치며 무대를 여는 이민영 시 ‘역설로 핀 꽃’을 편곡한 장수남의 노래 “사랑하기에 떠난다 했다. 가까이 있으면 몸부림 치고..(중략) 세월이 가면, 세월이 가면(중략)” 소리는 3대로 이어갈 수 없는 가옥의 고립, 현실 밖으로 구조되거나 구원 될 수 없는 장남(종손)의 고뇌를 그려낸다.
작은 딸은 술집으로 전전하고 큰딸 장일희(도유정 분)도 변호사 강민석(유민석 분)과 결혼을 하려고 했지만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상태로 밖으로 겉돈다. 장 씨 가옥 딸들은 “하찮은 딸년들이고, 종손만이 장씨 가옥의 대를 잇는 유일한 자손이다. 여자는 한 가옥에 살 수 없는 남의 집 사람이다. 증조 모(母) 제삿날 장남(장수남)은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며 누나들을 집으로 불러 모으는 장면이 있다. 장준희는 동생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이새끼”라고 한마디 툭 내 뱉고 장주호는 둘째 딸을 향해 “네 깐 년이 왜 남의 귀 한 집 종손을 깔보려 드냐?”고 받아친다.
장씨가옥의 여자는 대를 잇지 못하는 남의 집 사람이다. 장자 중심의 전통유교가옥 에서 여자는 일가의 가족이 될 수 밖으로 떠도는 인물로 설정한다. 장춘재와 불륜의 사랑을 하는 옛 제자 마은지(임성언 분)도 부모의 이혼으로 절망감, 남자의 배신, 음흉한 의붓아버지 눈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도망친 인생이다. 삶은 붕괴되어 있으며 인간과 가족으로부터 사랑의 전류를 채울 수 없는 결핍상태로 떠도는 인물이다. 그러나 분열되고 있는 장춘재의 내면, 쓰러져 가는 가옥을 향해 사랑의 온기로 치유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다.
남편에게 6첩 반상을 차리고 살아온 이 여사(박승태분)도 남편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하고 살아온 인물이다.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는 부처의 말을 곱씹고 살고, 인연과 업을 불심의 구원으로 씻어내려고 하고 맏며느리는 조모제삿날에도 찬송가를 부르며 제사상도 주문해서 올리는 부인과 살아보기 위해 종교를 갖고 싶어도 선택도 자유로울 수 없는 장자의 고뇌는 정신분열로 스며들게 된다. 과거부터 아버지 권위에 억눌린 장자의 욕망은 거세당한 채 살아야 했다. 결혼도 아버지의 선택에 의해 할 수 밖에 없는 장자, 물려받은 유산도 없어 이혼도 할 수 없는 상실감과 심리적 불안감은 불륜이라는 일탈적인 욕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로부터 거세당한 사랑의 온기를 극중 인물 마은지를 통해 회복하려는 불안한 내면의 욕망은 서재에 걸려있는 난파선 그림처럼 자신의 운명을 동일화 시킨다.
장춘재가 연극에서 사용하던 햄릿의 칼자루는 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르고 아버지를 거세했을 때 난파선에 올라탄 운명의 항로를 멈출 수 있다는 장춘재는 마은지도 마약환각상태로 몰아놓고 찬송가와 요령소리는 칼을 쥐고 아버지를 향해 달려들어야 하는 환청으로 들리는 악마의 소리가 된다. 2층 서재를 뛰쳐나와 칼을 들고 아버지를 향해 돌진하는 장춘재의 가족사는 권위적인 가부장적 가옥에 빨간 불이 켜켜 있는 불협화음의 신호들이다. 연극 ‘장씨일가’는 대가족의 붕괴와 분열, 전통과 현대를 잇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 기둥’을 환기시키고 해체시킨다. 장자중심의 유교환경은 현대사회에서 기둥을 지탱하지 못 한 채 전통은 붕괴되고 가족의 질서는 분열될 수밖에 없는 신호를 달고 70년대 ‘흑백리얼리즘’으로 메시지 전파를 보내고 있다.
장자의 고뇌와 상실감을 마약을 통한 정신분열적 행동으로 인한 환각상태의 복수극으로 중화 시켜 극의 종점을 향해 달리지만 장씨일가의 비극에는 가족사의 대립의 갈등은 없고, 막장을 달리는 장씨일가의 가옥에서 비추어지는 풍경으로 유교전통사회의 붕괴와 가족의 해체, 권위적 가부장제도의 추락, 전통과 현대의 소통단절의 문제점을 풍경으로 바라 볼 뿐이다. 장 씨 가옥의 붕괴와 균열은 종교적 구원이나 유교적 가옥의 기둥으로 버텨낼 수 없으며 장기호의 권위는 불교의 업과 인과응보로 돌려놓을 뿐이다.
장씨일가 가옥을 70년대 흑백 드라마 풍경으로 담아내는 정욱, 양재성, 박승태는 대사의 밀도를 당기고 좁히며 노장의 배우들은 장씨일가 가옥에 생명력을 넣었다. 그러나 장춘재가 햄릿의 칼을 빼들고 아버지를 향해 달릴 수 밖에 없는 절망의 고뇌, 상실감의 온기는 공허했다. 2층 서재에서 마은지와의 불륜장면과 두 사람의 심리적인 대립과 갈등을 대화로만 처리된 것과 불교사상의 시선으로(인연, 업, 인과응보) 인물들의 관계설정으로 묶었다. 특히 마은지와 장춘재 딸과의 술집에서 같은 생활을 했다는 설정은 투박해 보였다. 그러나 장면전환의 탄력적인 입체감, 대사위주의 장면구성, 상징과 연극언어에는 특별한 향기가 없어도 연극 ‘장씨일가’는 70년대 흑백리얼리즘의 온기로 돌려놓았다.
▶‘늘푸른연극제’와 작가 ‘김영무’
‘늘푸른연극제’는 한국연극에 평생 헌신해 온 대표적인 연극인들을 선정해 해마다 한국 연극사의 맥을 잇는 산 증인들(작가, 연출, 배우)을 선정해 2016년에 제1회 원로연극제로 개최되어 명칭변경한 뒤 올해로 3회째 개최되고 있다. 1회 원로연극제는 오태석(연출), 천승세(작가), 하유상(작가), 김정옥(연출) 선생 작품이 무대화 되면서 연극제가 출발됐다.
올해 3회째인 늘푸른 연극제는 전무송 ‘세일즈맨의 죽음’(김진만 연출), 전승환 ‘늙은 자전거’(연출 전승환), 배우 권성덕 ‘로물루스대제’(연출 김성노), 작가 김영무 ‘장씨일가’(연출 송훈상)으로 공연됐다. 작가 김영무(1943년)는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쫒겨난 사람들>이 당선된 뒤 40여편 이상 그의 희곡이 무대화 되고 있다. 공연되지 못한 작품까지 90여 편이 넘는 희곡을 써오고 있다. 1985년에는 한국희곡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동양극장의 연극인들>, <드라마의 본질적 이해>, <서양연극의 총체적 개념 정리> 등 다수의 책을 집필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 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