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에게 친근감 있게 다가가고 싶어요. 더 친해질 필요가 있는데, 자꾸 차갑고 시크한 역할만 해서…. ‘너의 결혼식’을 통해서 좀 더 친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배우 김영광(31)이 영화 ‘너의 결혼식’ 개봉 전 털어놨던 속마음. 이 소박한 바람은 다행히도 얼마간 이뤄진 것 같다.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친근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이 영화를 통해 김영광은 관객으로부터 적잖은 공감과 호평을 얻었다.
흥행 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너의 결혼식’은 줄곧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며 누적 관객 수 277만명(영화진흥위원회·17일 발표)을 동원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제치고 올해 개봉한 로맨스 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을 달성한 것이다.
김영광에게는 첫 스크린 주연작이었다. ‘너의 결혼식’ 개봉 즈음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첫 주연인데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너무 무겁지 않은 영화여서 좋았다”며 “촬영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영화 안에 잘 표현된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고 얘기했다.
“‘너를 결혼식’ 찍는 동안 너무 설레고 행복했거든요. 첫사랑에 관한 설렘을 다시 한 번 꺼내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현재 연인이 있다면 그와의 설렘도 다시 느껴볼 수 있고요. 연애세포가 다시 깨어나는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찍을 땐 저도 엄청 났었죠(웃음).”
‘너의 결혼식’에서 김영광이 맡은 배역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지고지순한 남자 우연. 고3 때 전학 온 승희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10년 동안 승희와의 인연을 붙잡은 채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며 엇갈린 사랑을 이어간다.
변화무쌍한 사랑의 연대기를 그리는 작품.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재미있게 찍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영광은 “공감되는 지점이 많았다. 나도 핸드폰 뒷 번호를 여자친구 생일로 설정했던 적이 있다. MP3 등 복고 아이템들도 추억을 떠올리게 하더라”고 말했다.
“첫 촬영 빼고는 거의 시나리오 순서대로 찍었어요. 그 덕분에 사랑의 연대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수월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죠.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니까 이입이 더 잘 되더라고요. 촬영 자체가 너무 편안했어요.”
전작 ‘피끓는 청춘’(2014)을 함께했던 박보영과의 연기 호흡은 두말할 것 없었다. 김영광은 “그동안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낸 것도 아닌데 이번에 다시 만나 너무 편하더라. 친해질 시간도 필요 없었다. 보영씨가 편하게 대해줘 엊그제 본 사람처럼 잘 맞았다”고 흡족해했다.
매우 현실적인 연애를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는 로맨스 흥행작 ‘건축학개론’(2012)과 비교되기도 했다. ‘건축학개론’에서 이제훈이 연기한 승민과 ‘너의 결혼식’의 우연은 어떤 차별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영광은 “좀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라고 답했다.
“되게 자유분방하지 않나요? 우연은 ‘직진남’이잖아요. 사랑에 대해 좀 더 용기가 있는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는 말이 안 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영화적인 상황으로 보면 되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지점이 (우연의) 무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웃음).”
애교 있고 귀여운 성격은 실제 본인과 많이 닮았단다. 김영광은 “모델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동안은 정장을 주로 입는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풀어질 수 있었다. 사실 원래 나는 잘 웃고 장난기도 많고 허당 같은 편”이라고 했다.
암담한 미래에 고뇌하는 사회초년생 우연의 모습에서는 연기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매달려 온 자신과의 비슷한 지점을 발견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꾸고 차근히 공부를 했던 게 아니라 항상 남들 앞에서 뭔가를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이어 “늘 떨리고 긴장된다. 안 좋은 얘기나 질타를 들으면 머릿속에서 굉장히 오래 간다. 자책도 많이 하는 편이다. 작품을 할 때마다 그런 작은 스트레스들이 쌓였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푸는 확실한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거든요. 잘 안 됐을 때는 잠도 잘 못 자죠. 20대 초반까지는 정말 많이 잤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잠을 깊게 못 자겠더라고요. 다들 그런 거 있지 않나요? 뭐가 안 풀리면 자책하고, 잠도 안 오고, 그러다 술 마시게 되고….”
그러면서도 작품을 만나는 일은 그에게 매번 새로운 활력을 준다. 오는 26일에는 마동석과 함께한 차기작 ‘원더풀 고스트’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영광은 “마동석 선배님은 진짜 귀여우시더라. ‘마블리’라 불리는 이유가 있다. 현장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드라마 ‘나인룸’(tvN) 촬영 중이기도 하다. 김희선 김해숙 등 쟁쟁한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작품. 그는 “혹여나 선배님들께 누를 끼치진 않을까,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매우 복잡하게 설계된 내용인데, 정확하게 이해하고 연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연애를 쉬고 일에 집중하는 시기인 것이냐’는 물음에 김영광은 “쉬고 있는 게 아니라 못 하고 있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언젠간 인연이 오겠죠. 생각은 하고 있어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군대 다녀오고 나서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는 “그동안 정말 쉬지 않고 일을 한 것 같다. 계속 하다 보니까 한 달만 쉬어도 ‘내가 왜 쉬고 있지?’ 불안해지더라. 마치 중독 같다. 일을 안 하면 도태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고백했다.
“일하는 게 재미있어요. 가만히 있으면 몸만 편하죠 뭐(웃음). 일을 하면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지금은, 일에 몰두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