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필리핀 카가얀 주의 투게가라오에서 주민들은 홍수로 잠긴 도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로에 심어진 나무는 반쯤 물에 잠겨 휘청이고 있다. 도로는 뿌연 물로 가득차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길게 굽이진 도로 의 위쪽에 서 있는 어른과 어린이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잠겨버린 도시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태풍 망쿳이 지나간 뒤, 필리핀의 모습이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인 16일 일요일부터 구조 작업이 진행됐다. 무려 25만명으로 추정되는 피해 이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대변인 해리 로크는 16일 “이번 태풍 망쿳으로 40명의 시민들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갑작스러운 산사태로 사망자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전국에서 25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피해를 입었고 그중 절반 정도가 북쪽의 피난소로 대피했다.
마틴 안다나르 장관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16일 피해와 복구 작업을 보기 위해 이 지역을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태풍 망쿳은 중국 본토로 건너 가면서 강한 바람과 폭우를 이끌고 홍콩을 질주하고 있다. 홍콩의 태풍 경고는 최고 수준이며, 도시는 교통이 일시 중단되고 모든 주민들이 실내에 머물 것을 권고받았다.
태풍이 시작되며 도로의 물이 무릎까지 잠길 즈음, 노란색 바지와 파란색 우비를 입은 남성이 도로에 나타났다. 그는 도로 한가운데에서 안전모를 쓰고 주민들의 대피를 도우며 교통을 안내했다. 한편 주민들은 한차례 심한 태풍이 지나간 뒤 산산조각 난 집을 정리했다. 무너진 건물과 부품들을 한쪽으로 밀어 더 큰 피해를 막았다.
해안가에 있는 필리핀 바세코 지역의 한 공동체는 임시로 머물 피난소에서 일렬로 줄을 서 흰쌀죽을 받아 먹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가지각색의 표정으로 일회용 종이컵에 소량씩 담긴 쌀죽을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 조그맣게 마련된 피난소 안에서 이불을 깔고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태풍으로 전기가 차단되자 임시 피난소 내부에서 초를 피워 식사를 하는 가족도 있었다. 이들은 작은 돗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수도인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198㎞ 떨어진 벵게트주 이토곤에서는 산사태 구조작업을 돕던 광부 2명을 비롯해 13살 어린이 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마을에서 생존한 이재민들은 태풍이 거세지기 전 소지품을 챙겨 피난을 시작했다. 광부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의 가족들과 친척들은 다 함께 서로를 도우며 짐을 나르는기도 했다.
이번 태풍으로 필리핀의 카가얀 주를 비롯한 7개 주에 전력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이에 10만5천명의 이재민과 함께 주민 440만명이 정전 피해를 겪고 있으며, 북부 코르딜레라 지역에서만 모두 42건의 산사태가 발생했다. 해안가에서는 높은 파도로 선박 운항도 중단됐다.
박세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