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장미여관의 드러머 임경섭이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망막색소변성증은 시력이 점점 떨어지다가 끝내는 완전히 잃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병”이라고 설명했다.
임경섭은 13일 페이스북에 긴 글을 올려 “저는 시각 모든 방향에서 10도 이하의 시각을 가진 장애인”이라고 밝혔다. 임경섭에 따르면 그가 앓고 있는 병은 환자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다르다. 곧장 맹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죽기 전까지 증상이 더디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임경섭은 “현재로서는 완치될 수 있는 치료법 자체가 없다”며 “환자와 가족들은 시각이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르는 채 불안한 나날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시력에 이상이 있음을 느낀 건 중학생 때였다고 한다. 저녁에 친구들과 농구를 할 때면 공이 안 보여 패스를 받지 못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갈 때도 벽을 짚어야만 걸을 수 있었다. 임경섭은 “(그때) 내가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된 것은 21살 때였다. 입대를 앞두고 야맹증 진단서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방문했다가 의사로부터 “곧 시각장애인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검사를 끝내고 귀가하는 길, 그는 눈에 넣은 약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아 행인에게 도움을 청해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임경섭은 “저는 초고회도 손전등을 24시간 몸에 지니고 다닌다”며 “어딜 갈 때면 보조 손전등까지 챙긴다. 혹시 잃어버리면 발을 헛디뎌 큰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연을 할 때도 어두운 무대 뒤에서 손전등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고 한다.
무대 위에서의 고충도 털어놨다. 장미여관은 항상 라이브 연주를 하기 때문에 공연 때마다 연주자의 신체 조건에 맞춰 악기 높낮이를 조절한다. 임경섭의 경우 한 손으로 손전등을 비춰가며 세팅하느라 다른 연주자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세팅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연하게 된 적도 많았다.
임경섭은 “그런 날이면 제 몸에 맞지 않는 드럼 세팅을 견디지 못해 양손이 찢어질 때가 많다. 시야가 좁으니 내가 몸으로 알고 있는 위치가 아니면 드럼 테두리에 손가락이 찍힌다”고 말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임경섭은 “무대 뒤에서 많은 관계자들이 반갑게 맞아주실 때 저는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소리로 구분한다”면서 “PD님인지, 작가님인지, 선배님인지, 후배인지 모른 채 꾸벅 머리만 숙인다”고 했다.
이어 “그간 ‘장미여관 드러머가 인사를 해도 잘 안 받더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오해가 생겼을 경우 사실을 말씀드리면 조금 낫지만, 곧장 풀지 않으면 저는 같은 분을 볼 때마다 혹시 나를 오해하고 있지 않을까 마음이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장미여관으로 지난 6년간 활동하는 동안 많은 분을 만나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언젠가 공개적으로 말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불쌍한 밴드로 비추어지는 게 팀에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아 얘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경섭 아내의 가족은 이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다. 그는 “결혼할 때 아내가 아직 시력이 남아 있으니 굳이 어른들께 밝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간 말씀드리지 않았다”며 “그래도 예전 주치의 선생님이 농담조로 저는 ‘신이 내린 환자’라고 했다. 진행이 정말 느린 편이라고 한다”고 했다.
장미여관은 2011년 앨범 ‘너 그러다 장가 못 간다’로 데뷔했다. 강준우 육중완 임경섭 윤장현 배상재 등 5명이 멤버로 있으며,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지난 6월에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함께’라는 앨범을 발표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