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뉴욕, 밀라노와 함께 세계 4대 패션 위크 중 하나로 꼽히는 런던패션위크에서 올해부터 동물 모피를 이용한 의류를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메인 패션 위크에서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런던패션위크를 주관하는 영국패션협회(BFC)는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런던패션위크 무대에 오르는 디자이너들 중에 모피를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디자인 업계가 소비자 정서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협회 최고경영자 캐롤린 러시는 “이번달 영국에서 시작되는 ‘퍼-프리(fur-free)’ 움직임은 패션계의 트렌드”라며 “많은 브랜드들은 이미 모피를 대신해 인조 모피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모피를 쓰지 않기로 한 대표적인 브랜드는 버버리다. 버버리는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들어오기 전부터 모피로 만들어진 모든 의류 라인을 없앴다. 버버리 최고관리자 마르코 고베티는 “(동물 모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모던 럭셔리,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구찌,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와 전자 상거래 업체 등도 모피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이미 모피를 금지한 에이소스(Asos)는 깃털, 실크, 캐시미어, 모헤어의 사용을 금지하기 위해 지난 6월 동물 정책을 개정하기도 했다.
런던패션위크를 일주일 앞두고 동물애호단체 ‘패타’가 런던패션위크의 의장에게 공개 편지를 보낸 것도 화제다. 그는 “모피 금지 정책을 세워달라”면서 “런던패션위크는 영국에서도 금지하는 모피를 사용하는 브랜드를 들여서는 안 된다”고 적었다.
영국패션협회 최고경영자 러시는 “우리는 사람과 동물의 권리를 모두 존중한다”라며 “디자이너들에게는 윤리적인 결정을 해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이어 “런던패션위크는 모피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다”며 “디자이너 컬렉션의 창의적인 과정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국에서 모피를 사용하는 것은 아직까지 금지되지 않았다”라며 “이 문제는 디자이너와 소비자의 결정에 달려있다”고 했다.
영국에서 2000년부터 모피 농장 운영은 금지됐으나 수입과 판매는 불법이 아니다. 영국 노동당은 지난 6월 50만명 이상이 서명한 청원을 접수한 뒤 모피 수입 금지 또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모피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환경이 당장 아름답게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 모피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브랜드들은 인조 모피를 사용한다. 인조 모피는 합성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제조 과정에서 유독한 화학 물질이 들어가기 때문에 또 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더 퓨처 레보러터리의 선임 크리에이티브 연구원인 레이첼 스턴은 “현재 PVC 제품을 생산하거나 처분하는 안전한 방법은 없기 때문에 ‘퍼-프리’가 완전히 환경 친화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조 모피 사용이 자동적으로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박세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