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재판 기밀 유출 의혹’ 전관 변호사 고발 요청 묵살

입력 2018-09-07 16:32 수정 2018-09-07 16:35
서울중앙지검(왼쪽)과 서울중앙지법(오른쪽)

법원행정처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현재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고발 요청을 7일 사실상 묵살했다. 유 전 연구관은 재직 시 취득한 대법원의 내부 기밀 보고서를 퇴직하며 외부로 반출한 혐의를 받는다. 법원은 지난 6일 유 전 연구관의 기밀 불법 유출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한 바 있다. 법원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에 대한 비협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처는 검찰의 고발 요청에 대해 “이미 수사하고 있는 사건에 관해 행정처, 나아가 대법원이 그 범죄 혐의의 성립 여부를 검토하고 고발 등의 방법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사건에 대한 의견 제시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정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 사법 행정의 영역에서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행정처는 또 “유 전 연구관이 보관하고 있는 문서 등은 그 보유 여부를 확인 후 회수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6일 대법원 기밀을 불법 유출한 혐의를 받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해 행정처에 고발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진상을 규명하고 중대 불법 상태를 해소할 수 있도록 신속히 유 전 연구관에 대한 범죄 혐의에 대해 검토해 형사고발, 수사의뢰 등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검찰이 대법원에 고발 요청까지 한 이유는 법원이 유 전 연구관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6일 기각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법원의 기각 결정 직후 “영장을 기각한 것은 심각한 불법 상태를 용인하고 증거 인멸의 기회를 주는 결과가 돼 대단히 부당하다”며 “지금부터는 (유 전 연구관의) 자료들이 은닉, 파기돼도 막을 방법이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특히 검찰은 “그간 법원은 재판 검토 보고서 등 재판연구관 작성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밀자료여서 재판의 본질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계속 기각하고 있었다”며 “이런 자료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법조계에서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유 전 연구관은 대법원에서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던 시기(2014년 2월∼2017년 1월)에 취득한 대법원 재판 검토 문건 파일 수백개를 퇴직하며 외부로 무단 반출한 혐의(공공기록물관리법 및 형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등)를 받고 있다. 유 전 연구관이 챙겨 나온 문건 파일 대부분은 유 전 연구관 본인이 아니라 휘하 연구관들이 작성한 문건 파일로 전해졌다. 이 문건에는 대법원이 심리하고 있는 주요 사건의 논의 방향과 대법관들의 심증 등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 기밀 문건이 무단 유출됐는데 법원이 ‘죄가 안된다’며 영장을 기각한 셈”이라며 “기밀 서류를 그냥 들고 나와도 괜찮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처가 문건 회수 조치를 바로 실행하지 않고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도 사실상 증거인멸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행정처의 문건 회수 조치 검토 방침에 대해 “그 자료들은 수사 진행 중인 범죄의 ‘증거물’”이라며 “이러한 증거물에 대해 수사 대상자의 과거 소속기관이 임의로 회수하는 것은 증거인멸죄 성립 가능성 등 위법성이 있어 불가하다”고 맞섰다.

검찰은 법원의 협조를 기다리지 않고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태도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유 전 연구관을 9일 오전 10시 공개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최근 유 전 연구관을 한 차례 면담한 적이 있지만 공개 소환 조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