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전 세계적인 미투 열풍에 힘입어 성범죄 피해자들이 용기를 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중 대부분은 역고소로 다시 고통 받고 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이자 피해자지원네트워크 자문으로 있는 차미경 변호사는 6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에이레네홀에서 열린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박모 목사 성폭력 사건 피해자 중심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2차 가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금 현재의 상황을 ‘반동(反動)의 시기’라 정의하며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하고 벌을 받는 게 일반적 프로세스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역고소는 반동 현상의 끝으로 그 전에 이미 많은 2차 가해가 피해자에게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지원네트워크(공동대표 정균란 목사·채수지 목사) 주최로 열린 이날 기자회견은 기장 소속 박모 목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단의 대처에 피해자 목소리가 결여돼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다. 조카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박 목사는 지난달 22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지원네트워크 공동대표 정균란 목사는 “해당 사건에 대한 (교회와 노회의) 집단 침묵은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암묵적 범죄 방조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며 “교회와 교단은 침묵 또는 가해자 지지의 어리석은 단체 행동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정의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 목사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A씨는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피해자지원네트워크에 보내온 입장문엔 세상 법으로 치유할 수 없는 억울함과 원통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A씨는 “어느 날 갑자기 상상치 못한 일이 내게 벌어졌고, 충격에서 헤어 나올 겨를도 없이 교회로부터 2차 가해를 받아야 했다”며 “박 목사의 죄가 세상에 드러났지만 여전히 난 지옥 같은 삶을 산다”고 했다. 그는 “교회는 박 목사의 범죄를 모두 알고도 사건 무마에 혈안이 돼 오히려 나를 가해자로 몰아붙였다”며 “무고로 고소까지 했다”고 전했다. 이어 “교단마저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는 말에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며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겠지만 흉터는 고스란히 남아 평생 (나를) 괴롭힐 것”이라고 덧붙였다.
2년 전 기장 소속 김모 목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던 B씨는 호소문을 통해 연대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박 목사 성폭력 사건에 대한 기장 측의 대처를 관심 있게 봤다”며 “반가운 측면도 있었으나 그 어디에도 피해자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와 동일 집단, 동일 직업군인 그들은 가해자의 대변인을 자청해 시작부터 멀찌감치 피해자와 반대편에 서있다”며 “가해자를 대신해 사과하고, 가해자의 피해를 어떤 방식으로 최소화시킬지 골몰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들은 가해자 잘못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 모습을 어느 정도 수위로 조절해야 대외적 위신이 깎이지 않을지 계산에 능란하다”며 “진정성 없는 면피용 사과는 멈추고 피해자와 함께 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피해자지원네트워크 관계자들 모두 B씨 호소에 공감했다. 정 목사는 교단은 세상 법의 판정에만 기대지 말고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낼 수 있는 교회 성폭력 관련법을 반드시 제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다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 우왕좌왕 하지 않길 바란다”며 “자신이 피해자임을 밝히고 교단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하는 낮은 젠더 감수성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