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의 사상자를 낸 용산참사 당시 청와대가 비난여론을 막기 위해 경찰에 지침을 내렸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조사위)는 5일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사망자에 대한 사과 및 조사 결과 관련 의견 발표를 경찰청에 권고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 20일 발생했다. 용산 4구역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한 철거민과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등 32명이 서울 용산구 남일당 빌딩 옥상에 망루를 세운 뒤 농성하던 상황에서 벌어졌다. 이를 경찰이 강압적으로 진압하며 화재가 났고, 경찰특공대원 1명과 철거민 5명이 숨졌다. 24명의 부상자도 발생했다.
조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후 경찰은 일선 경찰을 동원해 온라인상 여론전을 펼쳤다. 경찰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있으면 이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식이다.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모 행정관은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 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다만 경찰이 이를 실제 이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군포연쇄살인사건은 연쇄 살인범 강호순이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을 납치해 살인한 일이다. 강호순은 연쇄 살인에 앞서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아내를 숨지게 하기도 했다. 강호순이 경찰에 검거된 날짜는 2009년 1월 24일이다. 용산참사 발생 시기보다 나흘 늦다.
청와대 행정관은 메일에서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계속 기삿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데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사위는 청와대가 했던 “행정관의 개인 아이디어를 전달했을 뿐, 청와대 차원에서 경찰에 보도지침을 지시한 바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믿기 어렵다고 봤다.
용산참사 때 경찰청장 내정자였던 당시 김석기 서울경찰청장(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내린 지시사항에도 ‘경찰을 옹호하는 기사가 게재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온·오프라인에서 경찰입장을 홍보하고, 언론계 인사와 접촉해 이 같은 대응을 하라는 것이다.
또 전국 사이버수사요원 900명에게 용산참사와 관련한 여론조사에 투표하도록 하고, 인터넷에 게시물이나 댓글을 매일 5건 이상 쓰도록 했다. 경찰 내부 문건대로라면 2009년 1월 24일 하루에만 게시물과 댓글이 약 740건, 여론조사와 투표 참여가 590여건 이뤄졌다.
조사위는 “이는 경찰법 제4조 위반일 뿐만 아니라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의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 권고를 할 수 없다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