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대 멘 장하성, 소득주도성장 ‘100일 전쟁’ 승리로 이끌까

입력 2018-09-05 18:00 수정 2018-09-05 18:39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문재인정부의 핵심 경제철학인 ‘소득주도성장’ 홍보전의 최선두에 나서는 모양새다. 지난 1일 당·정·청이 청와대 영빈관에 모여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유지하되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전원회의를 개최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고용 쇼크’에 이어 소득분배 지표 악화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전열을 가다듬는 와중에 장 실장이 일종의 총대를 메고 대국민 홍보에 뛰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3일부터 시작된 정기국회가 소득주도성장과 부동산대책 등 문재인정부의 경제운용을 둘러싼 여야의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장 실장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수출 중심 경제 패러다임 전환 필요”

장 실장의 홍보 전략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편으로는 소득주도성장을 통한 경제운용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과 방법론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1년여의 운용을 통해 개선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이다. 후자의 경우 정기국회에서 입법 성과를 내기 위한 명분 쌓기로도 해석된다.

장 실장은 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필요한 이유와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장시간 설명했다. 청와대 정책실장이 라디오방송에 나와 현 정부의 경제철학을 설명하는 건 이례적이다. 그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중 투자비중은 최상위권인 반면 국내 소비는 최하위였다. 소비를 해외 수출에 의존하다보니 경제가 성장해도 가계소득이 늘지 않았다”며 “국내 소비가 없는 부분을 (해결해) 또다른 성장의 축으로 만들고, 소득을 늘려 점차 심해지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소득 증대→소비 증가→투자 활성화→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설명이다.

장 실장은 소득주도성장 방법론이 최저임금 인상으로만 해석되는 것을 의식한듯 소득 증대, 생계 비용 절감, 사회안전망 확충이 3요소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교육비·의료비·주택비용 절감,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지급 등의 재정지원이 방안이다. 장 실장은 그러면서 소득 증대 정책과 관련해 “임금노동자 쪽에선 효과가 나고 있지만 자영업자의 사업소득을 늘려주는 방안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 실장은 최근 JTBC ‘뉴스룸’에도 출연해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펴면서 “일자리 개선효과는 올 연말쯤, 소득 분배 효과는 늦어도 내년 2분기에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지표·입법·체감경기,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장 실장이 언론에 등장하면서까지 소득주도성장 홍보에 나선 것은 청와대 내부 위기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현재 청와대와 경제팀은 거듭되는 경제지표 악화, 개혁 입법 지연,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구조적 난제에 둘러싸여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경제상황은 침체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2분기 실질 GDP마저 0.6% 성장에 그쳐 정부가 목표한 2.9% 성장률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3분기 1%대 중반의 반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목표 하향 수정이 불가피하다.

특히 2분기 성장에서 설비투자와 민간소비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 소득주도성장의 연결고리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장 실장도 “조선·자동차 업종의 구조조정과 토목공사를 정부 주도로 하지 않은 결과로 설비·건설투자가 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민간소비도 전체적으로는 늘고 있지만 온라인 매출 비중이 높아 골목상권이나 편의점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가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와 차별화를 위해 SOC 투자를 줄이는 대신 소득 증대→소비 확대라는 새로운 경로를 발견하려 했지만 이론과 현실의 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청와대와 정부가 ‘생활형’이란 꼬리표를 붙여가면서까지 그동안 도외시했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인정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타격이 심한 자영업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정기국회 100일 전쟁에서 야당의 반대를 넘어 성과를 내야 한다. 당·정·청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자영업자 개선 대책을 비롯해 기초연금법과 고용보험법 등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집중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최저임금 업종·규모·지역별 차등 적용 등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신성장 모델을 내세운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5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난 500일을 ‘반토막 경제’로 규정하며 소득주도성장에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은 국민을 현혹하는 보이스피싱”이라며 “나라 경제를 끝판으로 내모는 소득주도성장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고 비판했다. ‘사람 중심 경제가 아니라 사람 잡는 경제’ ‘베네수엘라로 가는 레드카펫’과 같은 날선 용어를 쓰기도 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속속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 2년차 후반에 접어든 청와대와 정부의 정책수단 만으로 버거운 과제들이다. 이미 생산가능인구 자체가 줄면서 노동력 유입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제조업 구조조정이 길어지면서 ‘일자리 정부’라는 야심찬 계획도 헛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노동력 유입 감소와 투자 부진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하지만 이를 위한 혁신 성장 생태계를 만드는 일도 단기간에 현실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정기국회 성적표가 나올 올 연말까지 지지부진한 경제상황이 계속될 경우 청와대와 경제팀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장 실장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직을 걸겠느냐’는 JTBC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제 직을 거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라며 “수십년 지속된 낡은 경제구조를 바꾸고 새 경제 패러다임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이건 단순한 단기정책이 아니다. 한국 사회 미래가 걸린 일이라 모든 걸 걸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