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룩한 강아지가 빗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듯, 우두커니 앉아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몽땅 맞으면서 말입니다. 출산이 임박했는지 둥근 배가 유난히 컸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홀로 길 위에서 새끼를 낳았을 겁니다.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4일 오후 게시돼 회원들의 안타까움을 샀던 사연입니다. 애견 행동 교정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고, 그 글이 커뮤니티로 확산돼 많은 이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원장은 지난 3일 동네의 한 주민이 교정원 문을 두드렸다고 했습니다. 몸이 흠뻑 젖은 강아지를 안고서요.
주민은 이 강아지가 자신이 거주하는 빌라의 화단 근처에 이틀째 있었다고 했습니다. 강아지는 비가 오는데도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민은 강아지가 추운 듯 몸을 떠는 게 걱정돼 교정원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이미 반려견 2마리를 키우고 있어 보살필 형편이 안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원장은 강아지를 곧장 동물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다행히 건강에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수의사는 강아지가 두 살에서 세 살쯤 돼 보인다며 “초음파 검사 결과 뱃속에 새끼 5마리가 있고, 일주일 전후로 출산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원장은 강아지가 안쓰러워 당분간 태어날 새끼까지 모두 임시보호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유기견 7마리를 구조해 돌보고 있으면서도요.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그래도 좋은 분들 덕에 구조돼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네티즌은 “도움 주지 못해 미안해. 꼭 좋은 주인 만나길 바라”라고 했습니다. “건강히 출산하길 바란다”는 댓글도 있었습니다.
사연 속 주인공인 루루애견스쿨 신영건 원장은 5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제 판단에는 유기된 것 같다”며 “보통 유기견은 버려진 장소에서 떠나지 않는다. 움직여봐야 3㎞ 이내”라고 말했습니다. 길거리 생활을 오래 한 것 같지 않고, 사람도 잘 따른다고 합니다. 신 원장은 “태어날 새끼들이 사랑이 넘치는 주인을 만나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비가 오던 날, 동네 주민이 강아지를 외면하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했다면, 신 원장이 주민 품에 안겨 떨고 있는 강아지를 받아들지 않았다면, 이 강아지는 지금도 길거리를 떠돌고 있을 테죠. 사람도 아닌 동물인데 뭐 이리 요란스럽냐고 할 수도 있겠지마는, 이들은 그 동물을 사람 돕듯 보살폈습니다. 결국은 이런 마음이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닐까요. 사람이건 동물이건 어려움에 처한 생명을 모른 체하지 않는 마음 말입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