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 S는 어느 날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평소 수줍음은 많지만 말도 잘하고 야무진 편이었다.
S는 네 살 즈음에도 말더듬이 생겨 부모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저절로 좋아졌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아지려니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심해져만 갔다. 강도나 빈도가 늘고, 요즘엔 말을 할 때 긴장하면서 힘을 주게 되니 어깨나 다리를 움찔거리는 부수행동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야단도 쳐보고 스트레스 받나 싶어 학원도 모두 끊어 보고 하였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이 3~5세 경에는 언어 발달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말더듬이 있는 경우가 많다. 머리 속에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은 아주 많아지는데 언어 발달 속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생각과 언어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수롭게 S처럼 지켜보면 대부분 저절로 나아진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말 못할 상처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 아빠도 말더듬이 시작되어 학창 시절 내내 놀림 받고 따돌림 까지 받았다고 한다. 쾌활했던 성격이 움추려 들고 사람을 대할 때 점점 위축 되고 긴장이 되어 현재도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었다. S가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겪는 다는 게 못 견디게 힘들고 불안했다. 그래서 S의 말더듬 초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이가 말을 더듬으면 말을 다시해보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교정이 안되면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말더듬은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아빠는 자신이 겪었던 상처를 딸에게 투사하면서 불안해지기도 하였고, 유전적인 소인이 있는 것 같아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복합적인 감정으로 혼돈스러워 아이를 야단쳤다가 미안한 마음에 잘해 주었다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더듬이 고착되면 빨리 좋아지는 것은 아니니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자꾸 교정해 주려 하면 점점 더 심해질 뿐이다. 아이가 더듬을 때 다시 잘 말해 보게 하는 S아빠의 방법은 최악이다. 아이가 말하는 것에 위축되고 긴장되어 많이 심해 질 수 있다. 또래나 형제간에 경쟁적으로 말을 하려 할 때 심해 질 수 있으므로 천천히 순서를 정해주고 말하게 하는 게 좋다. 다른 아이가 끼어들거나 말할 순서를 놓치게 되면 아이는 마음이 급해져 말더듬이 더 심해진다.
형제, 자매간에 말더듬을 흉내 내거나 놀리는 행동은 절대로 막아주어야 한다. 대답을 얼른 하라고 재촉하지 말고 할 말이 머릿속 에서 정리 될 때 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아이 말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게 좋다. 말할 때 아이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하” “으응” “그랬구나”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 등등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반응해 주면 아이는 상대의 경청에 편안한 마음으로 말을 이어갈 수가 있다.
천천히 말하라고 강요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보다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가족 모두 말도 천천히 할뿐더러 생활태도 자체를 느긋느긋하고 여유 있게 바꿔 나가면서, 말하는 속도도 함께 늦추어 나가야 한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가족을 모델링하도록 한다. 이 모든 수칙을 엄수하더라도 아이와 대화 하는 중에 말더듬이 나오면 좌절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때 부모의 감정과 표정을 아이가 눈치 챈다면 아이도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말더듬을 더 의식하게 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부모의 표정까지 감추는 게.
따라서 부모와 아이사이 대화를 동영상으로 찍어서 부모는 자신들의 표정의 변화를 관찰하고 스스로 피이드백을 받아야 한다. 부모들의 아주 미세한 표정의 변화에도 아이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도 말더듬이 계속된다면 전문가를 만나 말더듬에 대한 직접 치료를 할지 간접 치료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