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이 가져다 준 산물은 이승우(20·헬라스 베로나)의 뚜렷한 성장이다.
이승우의 짧았던 축구 인생은 다사다난했다. 서울 대동초등학교를 이끌고 전국대회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던 이승우는 중학교 진학 이후 곧바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선택을 한다. 이후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자연스레 어린 나이에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지며 일찍이 스타덤에 올랐다.
바르셀로나라는 간판 아래 ‘코리안 메시’를 꿈꿨던 팬들의 기대감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화려한 시기를 보낸 그의 연령별 대표팀 시절을 보며 바르셀로나 홈구장 깜프누에서 뛰는 것이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 믿었다. 마치 지금의 이강인을 바라보는 것처럼, 모두가 그를 차세대 한국 축구를 이끌 미래로 꼽았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시스템에 몸담았던 수많은 유망주들이 그랬듯 1군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FIFA(국제축구연맹)에서 바르셀로나에게 내린 유소년 선수 출전 징계 때문에 오랜시간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바르셀로나 후베닐A와 B팀 등 유소년 팀만 전전하다 결국 자리를 잡는데 실패했다. 그 순간 대중들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은 더없이 차가운 냉대로 바뀌었다.
일찍이 자신에게 쏟아졌던 스포트라이트와 그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일부 팬들의 비아냥 속에 현명하게 대처할 줄도 몰랐다. 대중 앞에서 서툰 말과 행동들은 수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그의 형 이승준의 섣부른 SNS 활동 역시 한몫했다.
이승우는 바르셀로나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결국 2017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반전의 기회를 잡고 출전 시간을 부여받기 위해 세리에A에 새롭게 승격한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이승우의 자리는 없었다.
이승우는 세리에A 첫 데뷔 시즌 전반기 출전 기회를 거의 보장받지 못하며 시련의 기간을 보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경쟁자였던 팀 동료 다니엘 베사가 제노아로 이적하고 지암파올로 파치니가 스페인 레반테로 임대됐지만 후반기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17세의 어린 선수 모이스 킨에게도 밀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소속팀 헬라스 베로나 역시 시즌 내내 부진했던 흐름을 끊지 못했다. 7승4무27패라는 최악의 성적과 함께 리그 최하위를 간신히 면한 19위로 2부 리그로 강등 당했다.
그렇게 잊혀지는 듯했으나 이승우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신태용 전 감독이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명단에 그를 선발한 것이다. 신 전 감독은 이승우가 가진 잠재력과 시즌 마지막에 페이스를 끌어올렸던 부분을 높게 평가했다. 이승우는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반드시 득점이 필요한 후반전 교체로 투입되며 주로 조커로 활용이 됐다.
이승우는 제한적인 출전 기회를 부여 받으면서도 베로나 때처럼 왼쪽 날개와 처진 공격수 포지션을 수행하며 공격 과정의 유연제 역할을 했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에 없던 ‘활력소’ 역할을 하며 적은 출전 시간 속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리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자신이 한국축구의 미래인 이유를 증명했다. 베트남전 멀티골을 포함해 결승전에서 일본을 상대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모든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승부차기로 돌입할 수 있는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에서 지켜보던 팬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득점을 한 뒤 과감한 세레머니로 존재감을 마음껏 뽐냈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아시아 수비수들이 지난 시즌 이탈리아의 거친 수비를 거치며 성장한 이승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승우는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해 어린 나이에 병역 혜택까지 받아내며 남은 선수 커리어에만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며 자신감에 찰 법 하지만 태도는 더욱 겸손해졌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승우는 “우승을 차지해 기쁘다. 연장전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한 동료들과 벤치에 있던 코칭스태프, 지원스태프 등 모두에게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더 나은 선수로 성장할 것이다. 더 큰 목표를 잡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 나를 비롯해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이 더 좋은 선수로 한국을 빛나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소속팀 베로나에서도 신임 감독 파비오 그로소가 붙박이 주전으로 쓸 뜻을 수차례 밝히며 팀의 주축으로 올라설 전망이다. 베로나는 이승우와 함께 지난 시즌 강등을 당한 아픔을 잊고 절치부심, 다시 한번 세리에A 승격을 노리고 있다.
이승우는 아시안게임 활약이 힘입어 신임 파울로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A대표팀에도 승선했다. 벤투 감독이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것과 스페인 코치진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대표팀에서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이승우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승우의 목표는 아시안게임을 넘어 2022 카타르 월드컵으로 향하고 있다.
송태화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