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정의 패션톡] 튜튜 입고 코트에 선 여성 선수를 향한 불편한 시선

입력 2018-09-03 05:00
8월 27일 US오픈에서 코트 위에 선 세레나 윌리엄스. 게티이미지코리아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주 설명되곤 합니다.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으라고 권하지만 사실 어떻게 입는가 하는 것은 각자의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내 맘대로 입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나 남이 입은 옷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습니다. 회사를 예로 들어볼까요. 화려하게 차려입은 누군가에게 “회사에 저런 옷이 가당키나 하냐”는 식의 뒷말이 적지 않습니다.

운동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머리를 염색하거나 손톱에 색색별로 물들인 이들에게는 “운동이나 잘하라”는 핀잔이 쏟아지곤 합니다. 성적이 좋으면 그나마 면피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경기에서 졌다면 두 배 세 배로 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멋 부릴 시간에 연습이나 하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니깐요.

8월 27일 US오픈에서 코트 위에 선 세레나 윌리엄스.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유명한 여성 테니스 선수가 용감무쌍하게 튜튜를 입고 나왔습니다. 보통의 여성 선수들이 반바지에 엉덩이를 살짝 덮는 치마를 입는데, 그는 발레복에 가까운 치마를 입은 셈입니다. 화려해도 너무 화려했습니다. 주인공은 테니스 여제인 세레나 윌리엄스였습니다.

튜튜 치마는 엉덩이 부분을 잔뜩 부풀린 옷입니다. 성인 여성도 일상에서 잘 입지 않는 스타일이죠. 그런 옷을 코트 위에서 입었다니, “경기에나 집중하라”는 비판이 퍼뜩 제 머릿속을 스쳐 갑니다. 심지어 경기마다 튜튜 스타일과 색상을 조금씩 바꿔 입었습니다.

8월 29일 US오픈에서 코트 위에 선 세레나 윌리엄스. 게티이미지코리아


2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셋째 날 윌리엄스는 연보라색 튜튜 치마를 입었습니다. 27일 같은 대회 경기에서는 검은색 튜튜를 입었고요. 경기장을 들어설 때 검은색 가죽 재킷을 걸쳤는데, 당장 ‘힙스터’들이 잔뜩 모인 거리를 당장 걸어도 꿀리지 않을 만큼 멋져 보였습니다.

8월 29일 US오픈 경기장에 들어서는 세레나 윌리엄스. 게티이미지코리아


세레나 윌리엄스는 이달 초 프랑스오픈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전신 슈트를 입고 경기에 출전해 비판 아닌 비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치마도 없으니, 되레 경기력에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말이죠. 프랑스테니스연맹은 ‘캣슈트’(catsuit) 착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경기와 장소를 중시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남겼습니다. 세레나 윌리엄스를 향한 말이었을 겁니다.

세레나 윌리엄스가 입은 튜튜 선수복은 미국 출신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디자인한 나이키의 제품입니다. 버질 아블로는 흑인 출신에다가 지난 3월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 남성복 부문 디렉터로 영입돼 화제가 된 인물이죠. 유명한 스트리트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이끈 전력도 있습니다. 세레나 윌리엄스가 춤과 발레를 좋아하는데, 선수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반영했습니다. 세레나 윌리엄스를 위한 맞춤 제작인 셈입니다. 선수가 좋아하는 소재까지 따져가면서 몇 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탄생한 선수복입니다. 어울리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그날 옷을 얼마나 마음에 들도록 입었느냐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남들에게 멋져 보이는 스타일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각자 가치에 따라서, 옷이 주는 만족감은 편안함에서 올 수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혹은 학교에서, 아니면 거리에서 만난 그 누군가의 옷이 이상해 보여도 불편한 시선은 거두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 의상이 오늘 그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켰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세레나 윌리엄스도 튜튜를 입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어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