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개인정보 활용을 포함한 데이터 부문 규제 완화를 주문하며 규제혁신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달 19일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정책발표 행사와 지난 7일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완화 정책발표 행사에 이어 세 번째 혁신성장 현장 방문이다.
문 대통령은 31일 오후 경기도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에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데이터 경제가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우리도 그에 발맞춰 신속히 전략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대한민국은 인터넷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에서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는 나라가 돼야 한다”며 “데이터의 적극적인 개방과 공유로 새로운 산업을 도약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데이터 강국으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산업화 시대의 경부고속도로처럼 데이터 경제시대를 맞아 데이터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며 “공공부문의 클라우드를 민간에 개방하고 이용하게 함으로써 공공의 데이터를 민간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결합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규제혁신과 함께 국가전략투자 프로젝트로 데이터경제를 선정했다.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전문인력 5만명, 데이터 강소기업 100개를 육성할 것”이라며 “내년 데이터 산업에 총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다만 “정보화 시대에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위해 개인정보의 개념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과 관련된 정보를 개인정보, 가명정보, 익명정보 등으로 세분화 해 보호 대상은 확실히 보호하되, 나머지 영역은 규제혁신을 통해 가공 과정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를 이용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데이터 규제혁신의 목표는 분명하다. 데이터의 개방과 공유를 확대해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신기술과 신산업,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떤 경우든 정부는 데이터의 활용도는 높이되, 개인정보는 안전장치를 강화하여 훨씬 더 두텁게 보호할 것”이라며 “데이터를 가장 잘 다루면서 동시에 데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다루는 나라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 부처에 개인정보 보호 규제를 풀기 위한 입법 움직임을 서둘러 줄 것을 함께 주문했다. 개인정보와 관련한 주요 3대 법률은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다. 민주당은 이들 법을 개정하는 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대신 ‘규제혁신 5법’에 담긴 개인정보 보호 내용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특별법 입법 등의 형태로 조건부 규제 완화를 하자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개인정보 규제 완화가 통신 분야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고 개인정보 유출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추진한 은산분리 규제완화를 신중히 추진하기로 한 여당 기류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신중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 20일 정책 의원총회에서 특례법에 대한 의원들의 우려와 지적이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결국 8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도 은산분리 관련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데이터와 개인정보 규제 완화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