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도 인재(人災)” 구청 부서 간 ‘민원 핑퐁’ 하다 7일 허비

입력 2018-08-31 17:55 수정 2018-08-31 18:07
31일 새벽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아파트 인근 도로에서 싱크홀(땅꺼짐)이 발생했다. 뉴시스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아파트 도로에 대형 싱크홀(땅꺼짐)이 발생해 주민 200명이 대피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런데 관할 구청은 8일 전에 이미 아파트 균열 등 이상 징후 민원을 접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구청 측은 접수된 민원을 서로 넘기다가 싱크홀 발생 하루 전(30일)에야 담당과로 넘겼다. 특히 싱크홀이 발생한 A아파트는 금천구청장이 이달 초 ‘현장과 소통하겠다’며 방문했던 곳으로, ‘부실 행정’과 ‘보여주기 행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21일 ‘공사 현장 인근의 아파트 주차장에 지반 갈라짐, 침하 등이 우려된다’며 원인 조사와 공사 중단을 금천구청에 요청했다. 우편으로 발송된 민원은 지난 23일 구청 민원여권과에 접수됐다. 민원여권과는 다음날 해당 민원을 환경과로 넘겼다. 환경과는 접수된 민원을 지난 30일에서야 ‘해당 업무는 건축과 소관’이라며 건축과로 이동시켰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31일 “건축과가 31일 정밀 검사를 나갈 예정이었는데 당일 새벽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환경과가 왜 민원을 늦게 전달했는지는 조사하고 있다. 담당 부서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31일 오전 4시30분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A아파트 옆 도로에는 사각형 형태의 대형 싱크홀(가로 30m·세로 10m·깊이 6m)이 생겨 주민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싱크홀이 발생한 곳은 지상 30층 규모의 오피스텔 건설 공사장과 A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도로다. 소방당국 등은 공사에 따른 충격과 최근 내린 많은 비가 지반 붕괴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싱크홀이 이른 새벽 시간에 발생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주민 2명이 크게 놀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현재 주민들은 주민센터와 경로당에 임시 대피해 있다. 금천구청과 소방당국 등은 이날 저녁 사고 발생의 구체적인 원인 등 정밀 검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주민들은 금천구청이 업무를 다른 부서로 서로 ‘핑퐁’하다가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시간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A아파트 주민 진모(34)씨는 “아파트 바로 옆에서 고층 건물을 짓고 있으면서 보호 장치 등이 부족해 예전부터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어왔다”며 “그때마다 환경과는 건축과에, 건축과는 환경과에 문의하라며 ‘업무 핑퐁’을 했다”고 말했다.

진씨는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150여명 원생 규모의 어린이집이 싱크홀 발생 도로 바로 옆에 있다. 새벽에 사고가 발생해서 다행이지, 낮에 일어나서 현장에 누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해당 어린이집은 이날 지반 추가 붕괴 등을 우려해 학부모들에게 등원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소음 민원은 환경과, 침하우려 등 안전 관련 민원은 건축과 담당이다. 서로 업무를 분담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생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게다가 유성훈 금천구청장이 지난 9일 A아파트를 직접 방문해 주민 민원을 듣는 자리를 가졌지만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여주기 행정만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당시 유 구청장은 주민들의 소음 민원을 듣고 “주민피해 최소화를 위해 공사현장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 현장지도와 단속반 운영 등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