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양승태 대법원 당시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잇달아 기각하면서 그 사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전례 없는 사유로 영장이 기각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는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개입한 의혹을 수사하려고 당시 주심이었던 고영한 전 대법관과 사건에 연루됐던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청와대 비서관실, 고용노용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전날 대부분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지난 24일에도 고 전 대법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된 바 있다.
법원이 최근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사유 중 반복해서 등장하는 문구는 “임의 제출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이 강제로 압수수색까지 하지 않더라도 법원, 고용노동부 등의 자발적 자료 제출로 수사에 필요한 내용을 얻을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의 영장기각 사유에 대해 “어떠한 이유로든 전·현직 법원 핵심 관계자 등에 대한 강제수사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검찰이 이처럼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
법원은 최근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고용노동부에 대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서 “형사소송법 199조 2항에 따라 공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은 임의제출이 선이행돼야 한다”고 적시했다. 해당 조항은 ‘수사에 관하여는 공무소 기타 공사단체에 조회하여 필요한 사항의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조문은 사실조회의 근거규정일 뿐 공무소 압수수색의 선이행 조건으로 임의제출 요구를 규정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앞서 검찰은 외교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개입한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사전 임의제출 요구 없이 지난 1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 과거 청와대 공정거래위원회 기획재정부 등 공공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임의제출 요구가 없는 채로 발부됐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실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에도 “임의제출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특정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에 대해 이미 법원에 임의제출 요구를 했고 거부당했는데도 ‘그 검토보고서는 임의제출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각됐다”며 항변했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법원은 이미 임의제출 요구가 있었던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셈이 된다. 검찰은 관련 자료에 대해 정식 공문을 법원에 보냈으나 자료 제출을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에서)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고용부의 재항고이유서 등을 주고받았다면 이메일을 이용했을 개연성이 크므로 장소 압수수색이 필요없다” “재판연구관실에서 문건과 정보가 인멸될 가능성은 없다”는 사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 측은 이에 대해 “영장판사가 사건 관계자들이 서로 이메일로 자료를 보냈다고 단정할 전혀 없다”며 “근거없는 주관적 추측과 예단만으로 기각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