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 30돌 맞은 헌재의 역사적 장면들

입력 2018-08-31 14:42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해 파면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헌법수호의 의지가 없다”며 그를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했다. 최근 별세한 최인훈 작가는 이정미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읽은 주문을 ‘현대의 명문장’이라고 평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었다.

헌재가 31일 30돌을 맞았다. 1988년 창립 이래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파면을 비롯해 사법(司法) 영역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굵직한 결정들을 내렸다. 간통죄 위헌 사건, 동성동본 금혼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등이었다.

헌재의 결정은 사법적 판단 뿐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2015년 2월 헌재는 간통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간통죄는 62년 만에 폐지됐다. 위헌 결정이 나온 당일 대검찰청은 간통죄로 수감 중이던 9명을 즉시 석방했다. 배우자를 간통죄로 형사고소 할 수 없어 배우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늘어났다. 2005년에는 “헌법상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호주제가 폐지되기도 했다.

국민이 가장 의미 있다고 꼽은 헌재 결정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외교부를 상대로 낸 ‘위안부 피해자 배상 관련 행정부작위 위헌 결정’이었다. 헌재는 2011년 8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피해자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등 외교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2017년 3월 탄핵소추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2위에 올랐다.

최근 한국헌법학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헌법전문가들이 꼽은 주요 결정 1위는 박 전 대통령 파면 사건이었다. 응답자들은 “탄핵이 국민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것이었고 탄핵심판 결과도 국민들에게 정치적 성취를 안겨줬다”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헌재가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지속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탄핵 당시 외국에서조차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며 “폭동이나 쿠데타가 아닌 법치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아주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재 30주년 창립기념식에서 “헌법은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면서도 “헌법은 완전 무결하거나 영원하지 않다”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헌재에 주문한 것이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헌재는 재판소의 주인인 국민이 내미는 손을 잡고 눈물을 닦아드릴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