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혁신에 나선다. 개인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조치된 익명정보를 개인정보보호 대상에서 배제,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한다. 규제혁신과 동시에 내년 데이터 산업에 1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통해 개인의 신용등급을 감안한 맞춤형 대출금리 상품 및 개인종합자산관리 서비스가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 유출 등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관련 법 통과가 수월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의욕을 갖고 추진했던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도 8월 국회 통과가 무산된 상황이다.
정부는 31일 판교 스타트업캠퍼스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데이터 경제 활성화 규제혁신 행사를 개최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데이터는 21세기 원유”라며 “데이터 관련 규제혁신을 통해 데이터가 국민 삶의 질을 개선하고 산업을 일으킬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빅데이터 센터 구축, 인공지능(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등에 내년 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의 빅데이터 활용 및 분석 수준은 63개국 중 56위로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빅데이터 활용이 낮은 데는 글로벌 선진국과 비교해도 유독 높은 수준의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한국 현행법에는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익명처리한 익명정보를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익명처리를 해서 정보를 활용하려해도 현행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 법개정을 통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익명정보는 개인정보가 아님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기업의 맞춤형 상품 개발 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데이터 규제가 혁신되면 일상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선 개인의 소비·투자 행태 등 특성을 반영해 맞춤형 금융상품을 개발하는 게 가능해진다. 금융이력이 없는 주부나 대학생의 경우 사실상 은행권 대출은 거의 불가능했는데, 통신비 내역 등의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신용등급을 평가할 수 있게 된다. 통신비를 연체하지 않고 잘 낸 사람의 경우 신용등급을 높게 평가하는 식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보험료 할인상품도 개발될 수 있다.
이미 중국 등에서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금융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은 2014년 빅데이터를 활용한 소액 신용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농촌 거주자나 소상공인이 주요 고객이다. 개인의 전자상거래 결제, 통신비 납부 내역 등을 분석해 신용등급을 매긴다. 국유 은행이 외면한 고객들을 끌어모으면서 대출 규모는 지난 3월 6000억 위안(약 1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부의 규제 혁신 드라이브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 청와대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규제 혁신 과제들의 국회 통과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개인정보보호 관련 규제 완화는 진보 야당 및 시민단체들의 반대도 거세다. 2014년 발생했던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등의 사건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도 상당하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개인정보 몇 개를 암호화했다고 해서 개인을 식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금의 기술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개인정보 감독기구 통합 등 안전장치 마련이 우선”이라고 지적했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해 보호체계를 효율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날 구체적인 방안은 발표하지 않았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